오피니언
하나님은 세상을 왜 만드셨을까?
신앙은 사상이다. 사상은 교육으로 정립된다. 사상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 기독교 신앙은 사상이다.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인은 신앙 때문에 죽음도 불사한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사상이 있다. 하나는 유신론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 사상이다. 유신론을 대표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무신론으로 대표 되는 것이 공산주의의 유물론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상과 이론들은 다 이 두 가지에 포함된다.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기독교가 이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내세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에는 내세가 없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평등하게 함께 잘 살자는 것이 공산주의 이론의 기본이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기독교 내세관의 차안화’라 한다. 기독교가 바라는 그 천국을 이 땅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내세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사실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으로부터 출발한다. 자본주의의 폐해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빈부의 격차다. 잘 사는 사람은 한없이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은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폐해다. 그래서 빈부의 격차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넓어진 큰길로 공산주의가 들어오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 통치가 끝나고 이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공산주의 이론의 원조인 칼 마르크스의 할아버지는 유대교 랍비였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의 바탕은 사도행전 2장 이하에 나오는 유무상통이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3∼47)
그래서 역사가 토인비는 공산주의를 “도적맞은 성경의 한 쳅터”라 했다. 성경을 한 장 찢어다가 그것을 바탕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물질주의이고, 물질주의는 유물론이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는 무신론이 된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경제체제가 돌아간다. 자본주의는 돈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한국교회는 자본주의 늪에 깊이 빠져 있다. 그것도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천민자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람들은 돈을 가지면 갑질을 한다. 어디든지 돈 있는 사람들이 큰소리친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큰 교단들은 돈이 있어야 총회장도 하고, 돈이 있어야 방송 설교도 하고, 돈이 있어야 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 직분도 돈이 있어야 한다. 어떤 그 큰 교회는 장로가 되려면 2억을 내야 한단다. 또 어떤 교회는 사회 지위가 서장급 이상이라야 장로가 될 수 있고, 군인은 별을 달아야 한단다. 그래서 물질적인 축복을 강조하는 교회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왜 나를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왜 세상을 만드셨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는 선포로 시작된다.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문법과 상관없이 중요한 단어를 맨 앞에 두어서 강조한다. 성경 66권 중 맨 첫 절이니까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말씀이라 그렇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말씀이 믿어지면 모든 성경이 믿어지는 것이고,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으면 성경의 다른 말씀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살았다는 얘기를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일이나 물 위를 걸으신 일이나, 무덤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사실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하늘과 땅을 먼저 만드신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창조기사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던 날에 빛과 어두움도 함께 만드셨다. 왜냐하면 빛이 있어야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고, 밤이 있어야 생명체들이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날은 궁창을 만들어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물을 아래, 위로 나누고 그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이 궁창은 1절에 나오는 하늘이 아니라 새가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 즉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대기권을 만드신 것이다. 셋째 날에는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이 물을 바다라 하시고, 뭍을 나타나게 하셔서 그 뭍을 땅이라 부르셨다. 그리고 그 땅에는 각종 식물들이 자라게 하시셨다. 넷째 날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들이 나타나게 하시고, 해와 달로 하여금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다섯째 날에는 바다에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과 모든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지으셨다. 이렇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만드신 후에 드디어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다.
첫째 날이 있어야 둘째 날의 창조가 가능하고, 또 둘째 날이 있어야 셋째 날의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모든 환경을 만드신 후에 창조의 절정인 사람을 만드신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만드신 모든 것들은 오직 사람이 살기 좋게 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사람은 이제까지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지으신다. 하나님은 창조의 손길을 잠시 멈추시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은 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을까? 결국은 사람을 지으셔서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큰 우주와 그토록 세심한 배려와 온 정성과 능력을 다하셔서 사람을 만드신 까닭은 무엇일까? 닷새 동안의 창조는 오로지 인간이 살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드신 것이고,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면 창조의 목표가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었을까? 사람을 만드셔서 무엇 하시려고 만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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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효식 목사 (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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