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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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01 21:2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영광이란 무엇인가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시 29:1~2)

1. 시작하는 말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이 있다. 아주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이 되다보니 기독교 신자들에게 일반화한 보편적 상식이 되고 있다. 곧 기독교 신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을 영광스러운 분으로 ‘모시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언어에 대한 오해가 가져다준 과오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 용어에 대한 잘못된 개념 규정은 신자들 상호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생활에까지 잘못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영광을 누리시도록 최선을 다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흠집을 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이든지 영광스럽게 꾸미거나 만들어서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은 모두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부터 파생한 과오이다.   
신·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오해의 결과로 크고 작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구교는 더 말할 것도 없으나 개신교 역시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미명 아래 보기 사나운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다. 소위 성직자들이나 성가대원들이 성의라고 말하는 화려한 ‘가운’을 착용하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액의 비용을 들여 신궁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놓은 교회당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로 소위 ‘헌당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현상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에 대한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소위 목사나 장로 그리고 집사 및 권사 등을 ‘성직’이라 해서 거창하고 화려한 의식을 만들어 안수례나 임직식 그리고 장로 장립식 및 목사 위임식을 거행하는 의식절차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신궁(神宮)과 같은 건축물을 하나님께 헌당하는 일을 벌이거나 조잡스러운 형식 및 의식행위들도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순박하거나 어리석은 신자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소위 성전을 당연히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축해서 헌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지도자들이 소위 성직을 세우는 각종 행사를 하나님께로부터 높은 벼슬을 하사받는 준엄한 의식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교계의 뜻있는 인사들은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나 관심을 가지는 자는 소수에 그치고 있다.

2. 영광의 어의

기독교는 가장 고상한 종교로서 세속적인 종교와는 완전히 차별화될 뿐만 아니라, 최고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는 절대 진리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웅장한 신궁과 화려한 색채로 덧칠해진 조잡스러운 모형이나 형식 또는 의식으로 포장된 무속종교와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 따라서 교회가 참으로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그 중에 하나를 꼽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오해를 지나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본 주제의 올바른 성경적인 해답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영광’이라는 말이 어떤 분야에서 남보다 탁월하게 성공한 자가 누리는 영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가 ‘승리의 영광’이라든가 ‘합격의 영광’ 또는 ‘출세의 영광’ 등의 말들을 흔히 사용한다. 어떤 경쟁에서나 패배하는 자가 있으면 승리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국가고시에도 불합격자가 있고 합격한 자가 있다. 그리고 관료사회에도 관직에서 낙오자가 있는가 하면 높은 관직에 오르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이때 경쟁에서 승리한 자나 고시에 합격한 자, 또는 높은 관직에 오른 자가 영예로움을 누리는 경우를 ‘영광’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영광’이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영화스러운 현상’ 또는 ‘빛나는 영예’ 등으로 밝히고 있다.
성경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카보드(d/bK)’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영광’ 또는 ‘영예’, ‘풍부’ 등의 의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카바드(db'K)’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무겁다’ 또는 ‘존경하다’, ‘영화롭다’ 등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헬라어 원문으로 ‘독사(dovxa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광채’ 또는 ‘영광’, ‘명성’ 등의 뜻이다. 그리고 동사로는 ‘독사조( dox avz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찬양하다’ 또는 ‘영화롭게 하다’, ‘칭찬하다’ 등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들은 단순한 사전적 견해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깊은 이해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 외에도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품사를 달리하며 동일한 의미로 소개하는 용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이미 앞의 사전에서 밝힌 것과 거의 방불한 의미로 보인다.
  요컨대 지금까지 언급한 ‘영광’이라는 말에 대한 의미들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하는 상대적인 일반적 개념을 바탕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영광’이라는 말에 대한 사전적 의미들이 이미 대중적으로 보편화하여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깊이 올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절대적인 개념으로 승화시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계시하실 때, 기자들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보편적인 용어를 절대적인 특수한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사용하여 영원한 뜻을 기록하도록 섭리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말 성경에는 ‘영광’이라는 말이 더러 상대적 개념으로 사용된 경우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같은 경우는 그 문장의 전후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충분히 분별할 수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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