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바른성경과 개역성경 무엇이 다른가?(2)
2. 바른 원칙
바른성경은 바른 신학, 바른 역자, 바른 원칙, 바른 언어를 전제한 바른 번역이다. 여기서 “바르다”는 말은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적 성경관에 입각한 신학이나 신앙이나 번역 원칙, 나아가서 현대의 한국 표준어를 뜻한다.
바른성경의 바른 원칙이란 성경을 번역하는 이론적 원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성경 번역이론에는 의미일치(Dynamic Equi- valent)와 형식일치(Formal Equivalent)의 두 이론이 있다. 바른 성경은 형식일치의 원칙을 따랐다. 의미일치는 의미 전달에 그 중요성을 두어 비록 원문과 그 어휘나 문법이나 구문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더라고 의미가 쉽게 파악될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경우 원문을 많이 손상하거나 원문에 없는 말을 삽입함으로 원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경의 무오를 전제한 바른성경은 가능하면 원문과 일치하도록 번역하는 형식일치의 원칙을 따랐다.
1) 창세기 12:2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이 될 것이다.”(바른성경)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개역성경)
원문에 “근원”이라는 말이 없다. 서양의 어느 역본에도 “근원”이라는 말을 삽입하지 않고 있다. 사람을 복이라고 칭하기 때문에 어색함을 피하기 위하여 개역성경에서는 “근원”이라는 말을 첨가하여 해석적인 번역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없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아브라함은 세상 만민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이다. 따라서 원문대로 “복”으로 번역해야 옳다. 원문에는 없지만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근원”이라는 말을 삽입한 것이다. 개역개정판에는 “복”이라고 고쳤다.
2) 창세기 25:8,17; 35:29; 49:33; 신 32:50
“죽어 자기 백성에게 합류하니”(바른성경)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개역성경, 개역개정)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표준새번역)
개역 성경에서 히브리어 암(<u)이라는 말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열조”나 “조상”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없다. 또한 히브리어 아삽([sa)의 니팔형은 “돌아간다”는 의미보다는 “모아졌다” 혹은 “합류하다” (be gathered together)의 뜻이다. 따라서 “그의 백성에게 합류하였다.”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 죽어서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분명 그의 백성에게 합류한다는 의미보다는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다분히 유교적이고 한국적인 표현이다. “백성에게 합류하다”는 의미는꼭 육신적인 연대성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학적인 의미가 깊다.
3) 사사기 11:37-40
“37. 그 딸이 또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저를 위하여 이 일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두 달동안 제게 자유를 주신다면 산에 올라가서 제가 처녀인 것 때문에 저와 제 친구들이 실컷 울겠습니다.” 하니 38.그가 말하기를 “가거라.” 하고 두 달 동안 딸을 보냈다. 그 딸이 자신이 처녀인 것 때문에 자기 친구들과 산 위에서 슬피 울었다. 39. 두달이 끝날 때, 그가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왔으며, 입다가 자기가 서원한대로 그에게 행하였으니, 그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 이것이 이스라엘 가운데 관습이 되어” (바른성경)
“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 38. 이르되 가라 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39. 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개역성경)
이 구절들은 입다가 전쟁에 나갈 때 여호와께서 승리하게 하시면 그의 문 앞에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함으로 생긴 문제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37-40절에는 번제를 드림으로 말미암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없다. 입다의 딸은 그의 처녀성, 혹은 처녀임을 인하여 울었다고 했다. 물론 개역성경에는 작은 글자로 죽음이라는 말을 삽입하여 원문에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밝히고 있으나 작은 글자로 삽입해놓은 자체가 자의적인 해석적 번역이다.
4) 잠언 17: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는 보석 같은즉 어디를 향하든지 형통하게 한다.”(바른성경)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개역성경, 개역개정)
“뇌물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뇌물이 요술방망이처럼 보인다. 어디에 쓰든 안되는 일이 없다.”(표준 새번역)
표준 새번역은 분명 읽고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원문과는 거리가 멀다. 임자는 분명 히브리어로 바알(lub은 “주인”이라는 의미인데, 표준새번역은 “쓰는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히브리어 에벤-핸(/h-/ba)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은혜의 돌”(the stone of grace)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귀하다” (precious)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데 표준새번역은 “요술방망이”로 번역하고 있다. ESV는 이를 요술 돌(magic stone)으로 번역 하고 있지만 이러한 표현은 원문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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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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