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뉴스해설/한국교계의 연합회는 무엇을 위한 단체인가?
명분과 허울만 좋은 단체 "NO"
KNCC, 한기총 이어 전기총까지...교계연합체 홍수시대
연합에는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이는 아름다운 것과, 인간의 욕망에 따른 정치적인 야합이 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야합은 소개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서 인류가 연합하여 바벨탑을 쌓았으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리셨다. 광야에서 12명이 가나안을 정탐 했을 때 10명이 단합하여 가나안 정복을 반대했으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다.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는 왕의 후계자로 지명된 솔로몬을 배척하고, 왕궁의 대신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미혹하여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에는 처형당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시대에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10자파 반이 정치적으로 단합했으나 그들의 왕조는 삼사 대를 넘기지 못하고 파멸했다. 유대인들은 합심하여 무죄한 예수님을 처형했으나 그 결과로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참혹한 고통을 당하며 1900여 년 동안 유리방황했었다.
세상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줄 안다. 세상사는 다수의 힘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세상사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연합한다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해 준다. 그러나 모임의 진정한 가치는 주체와 목적에 있다. 무조건적으로 연합한다고 해서 능사(能事)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합당한 연합이 아닌 것은 싫어하신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연합했을 때는 앗수르에게 패망하게 하셨고, 남쪽 유대가 애굽과 연합했을 때는 바벨론에게 패망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힘에 의한 작용을 싫어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과 싸우려 할 때 32,000명의 군인을 300명으로 축소시켜서 전쟁에 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것을 싫어하심으로 1달이면 갈수 있는 거리를 40년 동안 돌아가게 하신다.
연합은 한 마음과 한 뜻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마음과 한 뜻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같은 사상과 견해로 응집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연합은 지역과 지역 간의 정치적인 결합이 아니며, 학연과 인맥으로 구성된 이권의 단합도 아니다. 오직 뜻을 중심으로 결합된 모임이어야 한다. 부부도 뜻이 같아야 갈등 없이 행복하고, 교회도 뜻이 같아야 평안하며 응집력과 기독교적 가치가 창출된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뜻이 같은 형제들의 모임을 아름다운 연합이라 했고(시133:1), 바울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같은 지체간의 모임을 교회라 규정했다(엡4:13).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모임은 진리를 중심으로 해서 기독교사상으로 일치된 연합체이다. 여기에는 누구의 주장도, 권한도, 권세도 통하지 않으며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의 뜻만이 모든 것을 평정하며 일치시킨다. 하지만 어떤 집단은 그리스도를 표면에 내세우고, 진리를 명분 화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충족시키려 한다.
한국의 기독교교계에는 전국기독교총연합회(전기총),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CC) 등 그 외에도 수다한 총회와 기독교적 단체가 결성되어있다. 그러나 연합회는 많지만 무엇을 위한 단합이며, 누구를 위한 모임체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기독교적인 명분으로 모인 단체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야 되고, 진리를 위한 운동이 선행되어져야 하며, 성경적인 사상이 일치되어져야 한다. 순수한 연합회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단체와 조직이 형성되며 사업이 구성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단체들은 기본적인 정신을 상실한 채 기독교적인 색채마저 실종되었다. 기독교적인 명분은 허울에 불과하고, 금권과 권력이 난무하고, 때로는 정치적인 힘을 과시하며, 단합을 위해서라면 모임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 사상마저도 간과되는 국면에 도달했다.
기독교는 인간들의 힘이 결집되고, 순수성이 퇴색될 때, 진리의 가치가 퇴락하고, 정치력이 막강해 진다. 4세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면서부터 교회와 공의회는 진리의 본질에서 이탈하며 정치적인 힘을 비축하게 되고, 부패와 타락의 일로를 걷게 된다. 한국교회는 부흥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몰락의 위기에 직면한 미국과 유럽교회들이 한국의 교회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교계의 실상은 진리에 무관심하며 도리어 정치와 이권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소수의 그룹과 학자들은 진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목회자는 오직 목회성장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성공한 목회자들은 조직력을 앞세워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서는 성경진리를 운운하면 촌스런 사람이 되고, 연합회 모임은 이벤트를 위한 명분 찾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어떤 집단이든지 기독교 단체는 오직 성경말씀에 입각한 진리의 노선과 사상이 일치되어져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회원들의 숫자에 따라서 연합회의 진정성과 가치가 평가된다면 이미 그 단체는 부패한 것이다. 연합회에 대한 가치관이 수정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장래는 위태로울 것이다. 모임을 결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하여 모여야 하는 목적이 우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이 같은 사람들로 결성되어 져야 한다. 화려하고 거대한 집회의 규모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한 소박한 탐구가 진행되어 져야 한다. 한국 기독교계의 현실은 연합회는 많지만 순수성을 상실했고, 정치력은 구비했지만 진리는 실종되었다. 자주 모이거나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것 보다는 무엇을 위해서 모일 것이며, 누구를 위해서 모여야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세력화된 조직에 소속되었다고 해서 안도감이나 조직력을 통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막강한 조직에 편승되지 못했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존재감이 상실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의 중요한 점은 규모에 따른 정치력이 아니라 목적과 사상의 일치감에 있다. 즉, 진리를 위해서 같은 사상과 같은 뜻으로 하나 된 연합체가 올바른 모임의 전형이다. 하나님의 일은 수(數)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들의 결집력으로 진위(眞僞)가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백성들로부터 안도감을 얻으려 백성들을 계수(計數)했을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예수께서는 고작 12명의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사역을 완수하셨다. 이제 학연과 인맥과 지연과 교권에 따른 모임은 그만하자. 이제 집짓기 경쟁이나, 권력다툼은 그만 하자. 이제 명분과 허울만 좋은 행사는 그만 하자. 이제는 실종된 진리를 탐구하자. 이제는 하나님의 뜻으로 모이자. 이제는 진리만을 전파는 모임을 결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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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미디어국장 |
“칭의의 복음으로 양육하시는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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