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의 토막 회고록 <말하는 대로>
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 때 난 왜 안 되지 되뇌었지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가열된 아스팔트처럼 뜨겁게 불살라지던 여름. 그 여름의 끝자락에 화려한 방점을 찍은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무대가 끝난 후였다. 관객이 떠난 텅 빈 객석을 앞에 둔 채 차분하게 노래하던 한 코미디언과 가수, 그들의 이십대를 담은 노래 ‘말하는 대로’.
노래가 흐를 때 울컥했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노래가 슬펐던 건, 내게 더 이상의 주문이 될 수 없음을 알아서였다.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클 지금의 스무 살들, 자신이 가는 길의 목적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십대 중반들, 서른을 목전에 두고 또 한 번의 방황에 우울해지는 후반들.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이겠지. 어떤 훌륭한 주문도, 그럴듯한 계획과 목표도 나를 이끌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그 때의 상실감, 열패감, 공허함, 암담함이란….
길어도 두 페이지가 되지 않는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작성할 때마다 나의 얕음과 부족함, 고작 몇 줄로 요약되어지고 마는 나의 이십대에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야훼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제한다면, 그로 인한 자긍심을 제외한다면 나는 그저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그렇고 그런 노동자이자 소시민 혹은 무수한 사회초년의 이십대들 중 하나인 것이다.
더 고질적인 문제는 내가 가진 이상이나 가치와 맞는 조직이 없다는 거였다. 설령 맞는다 해도 그것은 이념일 뿐 일과는 엄연히 별개의 것이었다. 또한 그런 곳은 연봉이 상식적이지 못했다. 버는 돈이 고스란히 생활비로 털릴 판이었으나 요는 그러한 상황을 모두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그 일이 가치로운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목숨을 걸 만한 가치. 그딴 건 세상에 없었다. 내가 약아서가 아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했을 뿐이다. 에너지는 넘치는데 그것을 쏟아 부을 곳이 없다.
그래서 ‘말하는 대로’를 들을 때마다, 그 노래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세상의 끝에 마주 선 연인의 로맨스보다 더 절절하게 가슴에 메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동질감. 그러나 모두가 그렇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주지는 못한다는 데에 대한 외로움.
아마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면 나는 여전히 ‘삽질’을 계속하며 일과 돈과 가정으로 압축되는, 그것으로 끝인 가련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매번 한탄하면서도 결국은 ‘인생이 뭐 다 그런거지’하고 소주잔이나 기울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가 그들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새삼 두렵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일단 나는 목숨을 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진리, 이것이 삶에 얼마나 무지막지한 동력이 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얼마 전 창업을 한 친구가 매일 두 시간도 채 못자면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걸 봤다. 그 친구는 그 일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멋있었다. 몰두하고 열중하는 모습처럼 근사한 것은 없다. 누구에게든, 목숨을 걸 만한 일이 있다는 건 사사로운 것을 쳐내게 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간소화시켜 바늘 끝 같은 집중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의 근원이 된다. 현재의 괴로움까지 괴로움으로 느끼지 않게 하는 진통제이기도 하다. 그런데다가 이 진리란 것은 끝이 허무하지 않다. 신의 논리답게, 알면 알수록 깊어지고 쌓으면 쌓을수록 진해진다. 단순히 종교의 교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을, 세상을, 학문을, 모든 것을 관통하고 정리해준다. 모든 문제에 대입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원리, 단 하나의 무기.
또 하나는 나를 뜨겁게 하는 가슴 속 깊은 곳의 소원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나의 열심과 욕심에 의한 ‘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에게 소원을 주셨고 그것으로 성실하게 하시어 이루어주실, 보장된 약속이니까.
지금 느끼는, 저물어가는 이십대로써의 쓸쓸함이나 방황이 그저 그것으로 끝나는 부질없는 것이 아닌 까닭은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까지도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풀려가는 것이고 종국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만한 위로와 파이팅이 없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노래라도 한 곡 만들어야 하나? 제목은 ‘줏님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