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6-02-21 21: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미나토 가나에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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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베인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혹여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 시기가 지난 후에 읽기를 추천한다. 미나토 가나에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는 <고백>의 원저자로, 일본 드라마로 제작된 <고교입시>, <야행관람차>를 비롯해, <N을 위하여>, <소녀> 등의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모성>은, ‘작가를 그만두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라고 포부를 밝힌 만큼 비장한 각오가 서린 작품이다. 그런데 그 비장한 각오는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에 대해 거는 일반적인 기대와 조금 결이 다르다. 탄탄한 구성과 반전으로 인물의 심리와 욕망을 꺼내어 놓고 호된 뒤통수를 치는 게 그녀의 주특기라면, <모성>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 얽힌 미묘한 콤플렉스를 낮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그래서 더 비극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나’와 ‘엄마’는 애착관계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모녀다. ‘나’는 모든 욕구와 기호와 취미를 엄마로부터 승인받아야 안심한다. 심지어 결혼 상대도 엄마의 미감에 맞추어 고른다. 엄마가 기뻐하는 일만이 그녀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사태가 난 어느 위급한 밤, 장롱에 깔려 있는 엄마와 딸을 구해야 하는 순간에, 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딸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후로 몇 년간 딸을 쓰다듬거나 어루만지지 않는다. 그걸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적극적인 거부를 일삼는다. 그 거부의 반대편에는 그만한 양의 집착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죽은 엄마를 향해서만 쏟아 붓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딸은 소외된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 속에서 딸은 ‘나’의 패턴을 반복한다. 엄마가 즐거워하는 것만이 자기 삶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과연 모성이란 무엇일까. 학습된 개념일까, 유전적 본능일까. 모성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타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윤리적인 불편함을 낳는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은 아닐까. 미나토 가나에는 소설의 말미에 이런 구절을 내놓는다.

“시간은 흐른다. 흐르기 때문에 엄마를 향한 마음도 변한다. 그럼에도 사랑을 애타게 원하는 존재가 딸이고, 자기가 애타게 원하던 사랑을 자기 자식에게 주려는 마음이 모성이란 것 아닐까.”

엄마는 자기에게 있었던 결핍을 딸이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가 원해왔던 사랑을 주고 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크고 더 깊은, 마르지 않는 사랑을 탐욕스레 바란다. 그 바람은 결단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리하여 딸은 엄마를 영영 짝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모성>에서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문법이 비단 모녀관계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문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녀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게다가 저런 식이라면 대대손손 영원히 결핍은 사라질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결핍의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어떤 누구도 완벽한 사랑을 구현할 순 없을 것이다. ‘사랑을 애타게 원하고, 자신이 원하던 것을 주려는 마음’이 모성이라면 말이다. 인간으로서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과 노력과 희생일 것이다. 모성도 마찬가지이다. 지혜로운 엄마라면 자신의 결핍이 아닌 아이의 결핍을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러한 마음의 원동력을 신을 통해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흔들림 없이 지속될 사랑의 원천을 얻는 것과 같다.
(극단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엄마 된 임무는, 자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이 무섭고 황폐한 피조세계의 처음과 과정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이 세계와 전 우주를 거머쥔 분이 우리의 삶 또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그것을 배우는 교회가 소중하고 나눌 지체가 귀함을 가르쳐주는 것 말이다. 힘든 순간마다 삶의 주인된 분을 떠올려 위안을 얻을 수 있음은 얼마나 깊고 무한한 선물인가. 삶의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일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고단한 여정일테지만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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