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4-01-16 17: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 (1)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칼빈주의적 문화신학 수용-


머리말

고신교단의 조직신학을 대변하는 신학의 거장 이근삼(1923-2007)의 출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근삼의 신학을 조명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분은 부산의 고신대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신학적 사상은 한국 신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의 별세를 계기로 이근삼 전집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어 그분의 쓰신 원고를 정리하여 2007년 12월-2008년 1월 10권의 전집이 출간되어 그분의 정통개혁신학 사상이 한국 신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올해 이근삼 출생 100주년 기념으로 이근삼 신학을 주제로 한국개혁신학회가 고신대 개혁주의 학술원과 함께 공동 학술대회를 열고 초교파적으로 복음주의 학자들이 각자의 관심 있는 영역과 관점에서 이근삼의 신학사상을 연구조명하고 토론하게 된 것은 고신교단의 개혁신학사상의 토대를 닦은 이근삼의 정통개혁주의 신학사상을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필자는 숭실대 재직 시에 이근삼이 번역한 헨리 밴틸(Henry R. Van Til)의 『개혁신학의 문화관』(The Calvinistic Concept of Culture)을 통해서 이분이 문화신학에 깊은 관심과 연구를 하신 것으로 알고 필자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 일치함을 알게 되어 존경과 아울러 이분의 개혁신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학계에서는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이분의 출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계기로 이분의 신칼빈주의적 문화신학사상을 중심으로 이분의 신학사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Ⅰ. 신학적 배경

이근삼은 고려신학교 설립자 한상동 목사의 외조카로서 설립자의 신앙과 신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 전신인 남조선대학에 다니다가 1946년 9월 20일 개교한 고려신학교에 입학시험을 쳐서 합격하여 제1회 고려신학교 입학생이 되었다. 이근삼은 32년간 교수생활의 은퇴를 앞두고 1994년 교단 언론 「월간 고신」 편집인 서창수 목사와의 대담에서, 신학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질병을 심하게 앓던 어느 날 밤에 고통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피력하였다: “내가 처음 신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어느 날 밤에 심하게 앓게 되었는데 그 고통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한상동 목사님을 찾아가서 의논하고 고려신학교 개교 때에 입학시험을 치르고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제5회로 졸업한 후 미국과 화란의 유학을 거쳐 1962년 고려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32년간 고려신학교, 고려신학대학, 고신대학, 그리고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로, 학장으로, 총장으로 한국교회와 신학교를 위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사상의 초석을 놓았다.
이근삼은 고신에서 2년, 예과와 3년, 총 5년 동안 칼빈주의 신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신학생들 중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갔다 온 신앙의 용장들도 있었고, 신사참배로 더러워진 신앙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사명감에 불탄 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고신에서 5년 동안의 배움 가운데서 학생 이근삼에게 박윤선, 한부선, 두 분의 외삼촌 한상동, 한명동 목사는 그의 신앙적 모범상이었다: “박윤선 목사님이 신학의 전반적인 과목들을 가르쳤고, 한상동 목사님이 기도와 실천신학을, 한부선 선교사님이 선교적 신학교육과 실제적 생활을, 한명동 목사님이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는 박윤선에게서 칼빈주의와 성격해석학을, 한부선에게서 교회사를, 한상동에게서 목회와 실천신학을 배웠다. 그는 피력한다: “박윤선 교수님을 통해서 칼빈주의를 배우고 성경과 해석학을 배우고 조직신학도 배웠다. 한부선 선교사님을 통해서 교회사와 설교학을 배우고 한상동 목사님의 로마인서 읽기와 분해, 실천신학을 배워서 확신을 갖게 됐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교회와 성도, 목회와 설교를 배울 때마다 항상 새롭고 감격적이고 새 생명을 주는 감동적 배움이었다.”
이근삼은 자신을 “외골수 칼빈주의자”로 자칭한다. 평생 동료 오병세도 “그는 칼빈주의를 강의할 뿐 아니라 실천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이근삼의 칼빈신학은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생활에 구체화되도록 강조했으며, 칼빈주의 문화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하였다. 그는 1948년 학생 시절 오늘날 학생신앙운동(SFC)의 모태인 학생신앙 수련회에 오병세와 홍반식과 함께 청년신앙운동(YFC)의 모태인 청소년신앙수련회에 봉사하였다. 미국에서는 미국 보스턴 고든대학(Gorden College)에서 학사를 하고, 카버넌트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 Div.)와 신학석사(Th. M.)를 마쳤다. 미국에서 5년간 공부할 때는 후원하는 교회도 없이 학비를 직접 벌어서 공부하였다.
이근삼은 교단 언론 「월간 고신」 편집인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학문세계를 소개하였다: “미국에서 5년간, 화란에서 4년간 유학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반틸(Cornelius Vantil) 교수 밑에서 1년동안 대학원 과정(graduate studies) 변증학(apologectis)을 공부하였다. 존 머레이에게서도 배웠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제11차 WCC 총회 주제 분석과 개혁주의 시각에서의 평가
위대한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