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3-06-13 13:2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한국교회와 칼빈_52


칼빈이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는 동안 그는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그가 가르친 신앙의 유산, 그의 신학 체계를  가장 잘 지키는 교회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흑암에 처했던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게 된 것은 12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개혁교회 즉 장로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남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사들이 합세했고 감리교를 비롯한 여러 교파 선교사들이 와서 교회,학교, 병원 등을 세워 세계 선교 역사에 기적을 이룬 나라였다. 다른 것은 그만두고라도 한국의 기독교 세력은 대단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한국에 즐비하고 아직도 각 신학대학교에는 신학생들이 넘치고 넘친다. 이 세상에 신학대학원에서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시험에 낙방하여 고배를 마시고 재수, 삼수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은 선교의 대국이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나라인데, 우리 선교사들은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건다. 그리고 세계에 한국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또한 전 세계 흩어진 한인 교회 곧 디아스포라 교회는 선교 기지이다. 한국은 신학자들이 많다. 전 아시아를 다 합한 신학자보다 우리가 더 많다. 모든 정부 조직에도 신우회가 있고 직장마다 신우회가 있는 나라이다. 말 그대도 민, 관, 군 모든 곳에 복음 운동이 활발하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은 기독교 출판사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칼빈, 칼빈주의 서책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만큼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관심도 많고 수요가 많다는 뜻도 된다. 물론 칼빈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체계 그리고 칼빈주의 세계관을 바로 아는 것과는 별개이다.


한국 개신교는 칼빈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한국에 뿌리내린 개혁 교회는 200년간 미국에서 뿌리내린 장로교회이다. 미국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100년을 다듬어진 교회이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장로회는 결국 제네바의 칼빈의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다. 결국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 특히 장로교회의 사상적 뿌리는 개혁자 요한 칼빈에서부터 발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뿌리인 칼빈의 사상을 좀 더 깊이 있게 깨닫고 삶의 현장에 옮겨야 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고 전도를 많이 하면 되는 것이지 칼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한다. 우리가 칼빈을 믿는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우리는 칼빈을 믿는 것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성경, 성경 하지만 어떻게 성경을 이해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정직히 말하자면 오늘날 서양의 대학교 신학부에서는 성경을 성경으로 옳게 믿는 학자들이 드물다. 성경에 쓰여진 역사적 예수, 구속주 예수를 믿는 사람도 흔치 않다. 모두가 사회적, 경제적, 논리적, 합리적 방식으로 성경을 분석하여 버린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칼빈이 했던 것처럼, 종교개혁 정신을 본받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오늘날 서구교회는 거의 저물어 가고 있다. 모두가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버리고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이 판을 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신화의 기록으로 본 신학자라고는 하나 실은 종교학자로 모두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칼빈의 모국이었던 불란서에는 이미 개혁교회가 소멸되어가고 있고, 칼빈이 종교개혁을 했던 스위스 개혁회도 죽어가고 있다.


칼빈, 칼빈주의는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교회는 불이 꺼지지 않고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장점이 많지만 약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성장 부흥하는 교회로도 유명하지만, 싸우는 교회로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싸우되 진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교권 다툼, 영웅주의가 교회를 찢어놓고 있다. 신학교는 난립하고 무자격 목사를 양산하고 직업화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목회자들은 교회 성장을 지상의 목표로 삼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는 목회자의 영웅주의적 야망이다. 가끔은 꿈과 비전이란 이름을 앞세우기는 해도 교역자의 야망이다. 야망은 자기의 뜻과 욕구를 관철하기 위한 욕심이다. 일찍이 칼빈은 목회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목회자를 망하게 하는 것은 야망이라고 했다. 특히 칼빈은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에서 “탐욕과 야망은 모든 성직의 부패가 시작되는 두 근원이다.”(p.343)라고 했다. 칼빈은 오늘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내 중심의 목회나 삶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성경 말씀을 기억한다. 세상은 부패하고 타락했다. 교회도 세속화되었다. 그러나 바울 시대도 칼빈 시대도 오늘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 우리도 칼빈이 깨우쳤던 것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Soli Deo Gloria!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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