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칼빈주의와 칼빈_51
요한 칼빈은 칼빈주의의 시조이다. 그러나 칼빈이 처음부터 칼빈주의를 제창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칼빈의 신학과 칼빈주의는 다르다는 주장도 하고, 칼빈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후대 학자들이 덧붙였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칼빈주의에 대해서 깊은 생각도 없이 헤프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칼빈주의란 말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 이도 있다. 칼빈주의자라고 하면 마치 칼빈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칼빈주의 사상의 골격이 칼빈에게 근거했음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칼빈의 신학과 신앙의 근거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했다면 성경주의라고 하면 될 것을 가지고 굳이 칼빈주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칼빈이 살아생전에 칼빈주의란 말을 들었다면 그는 펄쩍 뛰었을 것이다.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위해서 싸웠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라는 곳에 가서 멈추는 성경 중심의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을 딴 칼빈주의란 말이 가당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을 금지했을 것이다.
칼빈주의는 칼빈의 신앙을 따르던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칼빈이 가졌던 신학과 신앙 그의 세계관을 칼빈주의라고 부른 것은 칼빈주의들이 좋아서 부른 것이 아니었다. 칼빈의 신앙 노선을 따르던 사람들은 칼빈주의라고 말하지 않았다. 칼빈이 생존했을 때도 칼빈은 수많은 것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끈질긴 공격, 자유주의자들의 항거 그리고 시의회의 당파 싸움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칼빈은 그래서 고난의 사람이요, 전투의 사람이었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요, 우리를 죄 가운데 구속하신 구속주요 심판주라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 그리고 불변의 진리인 말씀을 힘 있게 붙들고 설교와 강의를 줄기차게 했다.
칼빈의 사후 개혁 교회는 크게 고무되고 성장 발전했다. 그 이유는 제네바 대학에서 수학했던 지도자들이 속속 자기 모국으로 돌아가 교회 개혁의 주도 세력이 되고 개혁 교회는 힘 있게 뻗어갔다. 불란서는 휴그노파, 영국은 청교도, 스코틀랜드는 장로교회. 스위스·화란·독일·헝가리는 개혁교회라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교리적 기초는 칼빈의 개혁 신학이었다. 그렇게 되니 교회마다 신조와 신앙고백과 교리 문답이 체계적으로 세워져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스위스에는 헬베틱 신앙고백(Helvetic Confession), 화란에는 돌트신경(Dordt Canon), 벨기에는 벨직 신경(Belgic Confession), 독일에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sm),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이 채택되었다. 이것은 모두 칼빈의 종교 개혁의 열매요, 칼빈의 신학과 신앙이 범세계적으로 뿌리를 내린 증거이다.
칼빈주의란 가톨릭의 저주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교회의 부흥 성장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칼을 갈던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를 앞세워 이른바 제수잇 곧 예수회를 조직하고 개혁교회를 조직적으로 탄압, 핍박하고 허물기 위해서 공작을 했다. 그때 그들의 구호가 개혁 교회 성도들을 「칼빈주의자」라고 매도했다. 당시 칼빈주의란 아주 몹쓸 욕이었다. 칼빈주의자란 말은 칼빈파, 이단, 망할 놈들 등의 뉘앙스를 가진 욕지거리였다. 그들은 개혁 교회의 성도를 멸시하고 욕하면서 각국에서 핍박을 자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핍박을 받은 나라는 불란서 휴그노파들인데, 예수회는 휴그노파 50만 명을 살해했고 그 순교자의 피가 세느강을 붉게 물들게 하였다. 헝가리는 가톨릭이 정권을 잡자 개혁 교회 성도들을 십자가 성호를 긋지 않는다고 철십자가로 머리를 쪼아 죽였다. 그래서 지금도 헝가리 개혁 교회의 첨탑에 십자가 대신 별과 닭의 모습을 상징으로 쓰는 이유는 십자가를 가지고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사상의 세계관이요 인생관이다
이런 박해 속에서 칼빈주의란 말이 생겨났고 세월이 지나면서 고유 명사로 굳어졌다. 칼빈주의란 어떤 이는 예정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혹자는 5대교리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교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칼빈주의란 바로 “하나님 사상”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칼빈주의 정경은 오직 성경뿐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배후에 섭리, 간섭하시고 주관하신다는 이 사상은 칼빈이 발견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 말씀이다. 즉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인생, 세계, 우주,학문, 정치, 경제, 예술, 교육 등 삶의 전 영역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삶의 영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칼빈의 하나님 주권사상이고, 칼빈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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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한국교회와 칼빈_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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