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설교의 방법을 제시한 칼빈_35
칼빈은 설교 전문가였다. 왜냐하면 그는 일생동안 설교를 가장 많이 한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설교의 모델과 방법을 여러모로 제시했다. 1548년 칼빈은 서머세트 공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나라에는 활력있는 설교는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기록된 강화를 읽는 방법으로 그 나라를 전합니다.’’라고 했다. 이는 원고에 매이는 설교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임을 말했다. 칼빈은 잘 준비된 설교는 철저히 연구한 설교이며 이렇게 준비된 설교를 증거할 때는 성령이 자유롭게 인도하시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능력있게 증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강단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을 금했다. 그리고 설교자는 강단에 섰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신뢰해야지 다른 어떤 것에 기초를 둔 권면은 실상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했다. 특히 칼빈은 다니엘서 주석(p. 270)에서 목사들이 열심을 핑계로 삼아 소리만 버럭버럭 질러대는 것을 금했다. 쓸데없이 고함을 지르는 것은 자비의 모습도 없고, 권위도 없고 오히려 그들의 권고는 가증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설교자들이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설교한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칼빈은 설교할 때 청중을 하나님 앞에 세웠다
칼빈은 그의 신학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설교에서도 인간을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 세우려고 노력했다. 칼빈은 어떤 설교를 하든지 청중들이 지금 하나님의 면전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을 갖게 했다. 이것이 칼빈 설교의 독특한 방법이다. 설교는 듣기에 좋고 기분 좋은 말씀 또는 교양에 좋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언제나 인간을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 앞에 세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연약과 죄를 보게 되고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구주이시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찾게 된다. 또한 그렇게 할 때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바라보게 된다. 칼빈의 설교를 듣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금 하나님 앞에 자기가 서 있다는 확신 없이는 교회당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칼빈 신학의 열매이며 꽃이기도 하다. 하나님 중심의 신학은 그 설교에도 나타났다. 말하자면 칼빈의 신학은 설교에서 구체화되었다. 즉 칼빈의 성경관, 신관, 인간관, 교회관이 그의 설교에 고스란히 그대로 녹아있다. 그의 신학과 설교는 항상 조화를 이루었다. 따라서 설교로서 선포되지 않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했다
칼빈은 설교란 말씀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를 통해서도 그대로 재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많이 설교하는 방법인 풍유적 설교나 예증적 설교를 반대했다. 성경에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의 성격이나 잘잘못을 연구해서 그것을 단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한다면 그런 설교는 약간의 교훈은 줄지 몰라도 성경을 바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른바 예증적 설교(Exemplary Preaching)라고 하는데, 칼빈은 오히려 구속사적 설교(Redemptive Historical Preaching)를 그의 설교 방법으로 제시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결국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운동을 이루어 나갔다. 칼빈이 행한 디모데후서 3장 16∼17절까지의 설교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즉 사도 바울은 절대로 모세가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아니했으며 또는 이사야가 굉장한 능변가였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도바울은 앞서간 선지자들의 명성이나 위대함을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말했다. 그들의 언어는 성령의 인도를 받았고 그들 자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들을 통해서 말씀했다는 것이다. 사실 칼빈은 오늘 우리들에게 설교에 대해 놀라운 눈을 뜨게 한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성경을 말하게 하고 계시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칼빈은 일인칭 복수를 쓰면서 자신도 하나님 앞에 세웠다
설교자의 역할은 앞서 말한 대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중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 자신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려고 했다. 그의 성경해석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데 전문가였다. 그런 까닭에 칼빈에게 “하나님의 영광에서 영광 후”는 그의 신학과 신앙의 모토이고 설교의 중심 주제였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 중심사상, 하나님의 주권사상은 그의 신학이자 그의 설교의 본질이었다. 무엇보다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 그리고 인간의 전적 타락과 비참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늘 힘있게 설교했다. 또한 그가 설교한 교리는 단순히 교리에 머물지 않고 실제의 삶 속에 적용이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칼빈은 천부적으로 강해설교가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설교자였다. 기도는 칼빈 설교의 전주곡이었다. 그는 설교에서 대조적이며 논증적 타입의 표현 방식을 취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면전에 있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칼빈은 청중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흔한 비유와 직유를 즐겨 사용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박학다식했으나 설교시간에 그것을 말하기보다는 늘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증거하는 일에 열중했다. 칼빈은 설교할 때 일인칭 복수인 “우리” 또는 “우리들”이란 표현을 썼다. 즉 칼빈 자신도 청중 가운데 있는 한 사람으로서 죄인이며 구원을 받아야 할 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은 일생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설교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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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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