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성경 주석에 사활을 건 사람, 칼빈_26
칼빈은 위대한 주석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지 못하고 의식과 형식 그리고 전통의 그늘에 사로잡혀 있던 어둡던 시대에 칼빈은 성경의 진리를 깨우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일찍이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시 119:105)고 고백했던 것처럼 교회의 개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등이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설교하는 일과 성경 주석을 쓰는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칼빈에게는 성경 주석을 쓰는 것과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가 따로따로가 아니었 다. 그 사역은 늘 같이 하는 것이었다.
구술 또는 강의한 것을 필기했다가 주석으로 나왔다
칼빈이 성경 주석을 집필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칼빈의 많은 주석은 칼빈 자신이 쓴 것도 있지만 대체로 구약 주석은 그가 강의한 것을 모아서 편집한 것을 출판한 것도 있고, 신약 주석은 그의 비서들을 시켜 받아쓰게 한 다음에 그 원고를 교정해서 출판한 것이다. 칼빈의 성경 주석 출판은 훌륭한 제자들의 도움을 입었다. 칼빈은 그의 강연과 강의와 설교를 속기하는 비서들을 많이 두었다고 한다. 예컨대 칼빈에게는 유명한 인문주의 학자인 부데(Guillieme Bude)의 아들이 있었고, 또 칼빈의 처남 죤 비예 두 사람이 가장 가까운 비서로 그를 도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불란서에서 피난해 온 사람들로 칼빈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부데에 의하면그가 처음에 칼빈의 시편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필기를 했다. 그런데 그 강의의 내용이 너무나도 은혜롭고 감동이 되어 자기들만 그런 명강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쉽게 생각해서 필기한 친구들이 서로 노트를 비교하고 보충하여 칼빈에게 보이고 내용 확인과 수정을 가한 후에 출판하도록 했다고 한다.
칼빈은 천재적 기억력과 원어 실력으로 강의했다
또 칼빈의 친구인 콜라돈(Colladon) 목사는 소선지서 주석을 출판하기까지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551년 칼빈은 신열이 몹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선지서’ 원고를 다 검열하고 말라기서에 관한 몇 편의 강의 원고가 다 되지 못했을 때 인쇄는 재촉되고 자신의 불완전한 원고를 인쇄에 넘길 수가 없어서 자기 방에서 몇 사람에게 자기가 부르는 대로 받아쓰게 하여 원고를 맞추었다.”고 했다(Harouturnian p. 26). 칼빈은 천재적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칼빈은 성경과 언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교부들의 작품을 훤히 꿰뚫고 있는데다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이므로 그는 자유자재로 문장을 만들 수가 있었다. 그의 기억력이 비상한 것은 강의나 주석이나 편지를 필기시킬 때 어떤 방문객이 찾아와 그 사람과 한 시간 정도의 면담을 하고 와도 칼빈은 어디서 필기를 중단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칼빈의 생애 마지막에는 침대에 누워서 모든 필기를 하게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책은 아침 시간과 마음의 상태가 좋을 때 필기를 시켰다고 한다.
칼빈의 주석은 간결하고 실제적이었다
이사야 주석 원고는 데 갈라(Des Gallars) 란 비서가 필기했다. 칼빈은 이 분에 대해서 말하기를 “내가 글을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내 부르는대로 받아쓰고 그것을 다시 집에 가서 정리했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면 내가 그것을 검사했다. 내가 뜻한대로 기록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수정했다”(Hunter, p. 19)고 했다. 칼빈은 시간을 효율적으로도 쓸 줄 알았지만 기본적으로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주해로 가득 차 있었다. 칼빈은 준비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지식에 목사의 마음으로 늘 기도하면서 강단의 현장을 생각했기에 옆에 비서가 받아쓰기에 적절하도록 말을 구사했다. 칼빈은 이 주석들을 쓰기 위해서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생사를 걸었다. 특히 소선지서 원고를 정리할 때는 48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고 한다. 칼빈은 성경 강의를 시작할 때 기도하기를 ‘‘주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이 하늘에 감추어 둔 지혜의 비밀을 연구하게 하소서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덕육을 위해서 이 신앙이 참으로 발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때는 더욱 긴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칼빈의 성경 주석의 근거는 그의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이 주석을 계속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자신의 피와 땀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의 친구들의 희생적인 협조와 성령의 계속적인 인도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칼빈이 성경 주석을 쓸 때 편안하고 안정된 시간에 쓴 것이 아니었다. 가장 악조건의 건강을 가지고 설교, 강의, 목회, 복잡한 제네바의 정치, 행정 등에 힘쓰면서도 오직 교회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을 위해 주석 작업에 매진했다.
칼빈은 위대한 성경주석가였다. 그 이유는 그만이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66권의 성경을 통달하는 해박한 지식, 유럽 최고의 고전어 학자들에게서 쌓은 실력에다 그토록 절제된 경건의 삶, 강력한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서 항상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 살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위대한 대 성경주석가가 될 수 있었다. 칼빈의 문체는 늘 간결했다. 그의 성경 주석은 「기독교 강요」, 「설교집」, 「서간집」, 「소 논문집」과 더불어 모두 일관된 사상 체계를 갖고 있었다. 실로 칼빈은 성경 주석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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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
성경 번역가, 칼빈_27 |
성경 주석의 왕, 칼빈_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