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4-02-28 10: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11차 WCC 총회 주제 분석과 개혁주의 시각에서의 평가


<지난 호에 이어서>

마음의 에큐메니즘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여 세상에서 그 사랑에 대한 증인들로 만들어 내어, 오늘날의 세상에서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매우 반문화적인 방식으로 살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22항)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모든 인류와 전체 피조물과의 일치와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질서를 위해 노력하자고 권면한다.(23항) 그런데 여기서 이 문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회심이 아니라, 세상 질서에서 공동선으로의 회심, 창조 세계를 존중하는 회심을 주장할 뿐이다.
이 문서는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도구로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주제 해설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직접 끌어가는 것을 강조하였는데, 일치 선언문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일치에 기여하는 모습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교회가 일치되고 세상이 일치된다고 설명하여 교회의 역할을 중시하는데,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하는 도구로서 교회의 역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선교가 하나님 - 세상 - 교회의 순서를 주장하여 교회의 지위를 약화시켰던 데 반해, 2022년 총회가 교회의 일치 선언문을 발표하여 교회가 세상을 일치와 화해로 이끌어야 한다고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 점은 2013년 “함께 생명을 향하여(TTL)”에서 교회의 역할을 이전보다는 강조했던 경향의 연속으로 볼 수 있겠다. WCC 총회가 하나님의 선교에서 교회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세상이 먼저인지, 교회가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WCC 문서 안에서도 모순이 존재한다. 2013년 부산총회에서 채택된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새로운 확언”에서 17항에서 “선교는 교회 기원이라기보다는 결과”라는 정교회의 입장과 57항에서 “교회는 … 선교를 위해 탄생되었다. … 만일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선교 사이의 입장의 불일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는 일치선언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세상을 하나님과의 화해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복음주의의 시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점은 분명한 한계이다. 일치선언문은 복음전도를 우선시하는 복음주의와는 분명하게 노선을 달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와 세상을 화해와 일치로 인도한다고 하여 WCC의 사회봉사 중심의 노선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복음 전파를 우선시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마태복음 대위임령을 근거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주장하며 사회봉사를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WCC는 요한복음 20장 21절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세상으로 파송되어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인간들 사이의 평화(샬롬)를 구현하는 인간화를 목표로 하는 선교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교관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상에 직접 역사하는 가운데 교회도 그러한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WCC 총회는 실질적으로 이러한 교회의 일치에서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서 아직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WCC는 회원 교회들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하는데, 지역 교회들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 일치에 이르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부산대회에서 채택하려다 실패한 의로운 평화(Just Peace)문서의 경우이다. 이 문서는 정당 전쟁(Just War) 전통과 절대 평화주의 전통을 의로운 평화개념으로 종합하고자 하였으나, 의로운 평화 개념이 정당 전쟁론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남반부 교회들의 반대로 채택하는 데 실패하였다. 의로운 평화를 채택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절대평화주의가 현실적인 폭력 앞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였으나, 정의에 바탕한 평화를 강조하는 남반부 교회들이 의로운 평화가 정당 전쟁론과 입장이 다를 것이 없다고 반대하였다. 이같이 이들의 가시적인 일치는 아직도 지역교회들의 입장에서의 차이로 인해 실현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회원 교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치선언문은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경험과 정의와 평화를 위한 순례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코이노니아를 통한 일치의 길을 모색하면서, 마음의 에큐메니즘을 제시하였다. 지금까지의 에큐메니즘이 제도와 가시적인 일치를 추구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데 반해, 이 문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마음의 교제를 통한 가시적인 일치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영의 역사를 통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 마음의 에큐메니즘이 일어날 것을 지적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시적인 일치를 이루며 현실에 비판적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였다. 그렇지만 마음의 에큐메니즘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를 통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교리에 근거하지 않는 마음의 공동의 체험을 추구하여 감정적인 일치를 통해 교리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것이라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치선언문은 다양한 교회들의 협의회적인 가시적인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점에서 교리적인 순수성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WCC는 현재 교리적인 일치보다는 다양한 교단들의 교제를 통한 가시적인 일치를 이루어 놓고 그들 안에서 가능한 부분의 교리적인 일치를 이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교리적인 일치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서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장윤재는 WCC 문서는 알쏭달쏭하고 명쾌하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이번 문서에서는 교회의 일치에 관심을 나타내고,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다양하게 열거하고 있지만, 죄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세상의 질서를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언급은 대단히 빈약한 점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이 문서에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수직적인 측면들은 거의 사라지고 인간들 사이의 수평적인 화해에 집중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은선 (안양대학교 교수 / 교회사)

진정한 승리자 (마 5:38~42)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