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4-06-11 15: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루살렘성(城)을 보시고 우시는 역사적 예수(Ⅱ)


III. 성전(聖殿)의 종말

<지난 호에 이어서>

예수의 예언대로 황폐한 처소가 된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 현존의 처소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속죄 장소가 아니다. 모세의 율법이 규정한 희생제의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구약의 성전은 폐기되었으나 신약의 신령한 성전으로 전환된다. 그럼으로써 구약의 약속은 성취된다. 구약의 성전은 메시아로 오신 나사렛 예수 안에서 종말론적인 새로움을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구약의 성전은 신약의 교회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롬 11:25) 이방인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이방인 교회시대가 도래한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된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이는 하나님이 오묘(奧妙)하게 정해 놓으신 구속사의 신비다. 바울은 증언한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성전 정화의 권위를 묻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예수는 “종말론적 성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요(눅 19:46), 하나님의 율법을 강론하는 처소이다(눅 19:47). 성전 정화에 대한 권위에 관하여 질문을 받자 예수는 대답하신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이에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한다: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20) 복음서 저자 요한은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당시에는 아직도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했다가 나중에 부활절 이후에야 깨달았다고 요한은 해석하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

IV. 예루살렘성(城)의 종말

누가는 예루살렘성(城)의 종말에 관한 예수의 예언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 21:20). 예루살렘의 멸망이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예언되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눅 21:22).
복음서 저자 누가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에 관한 예언(막 13:14)을 주후 70년 초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 포위와 관련시킨다. 황폐 자체는 그해 여름에 있었던 예루살렘과 성전의 점령 및 파괴와 관련된다(눅 21:20):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눅 21:23).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때가 있다. 예루살렘이 무한정 황폐되지는 않는다. 그때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이다.
예수의 예언이 있은 지 약 40년 이후인 서기 70년(A.D. 70) 초순에 유대 열심당이 무력적 반란을 일으켜 로마에 대한 전면전을 하게 된다. 예루살렘에 대한 로마군의 실제적인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다. 유대의 열심당원들(the Zealots)이 로마에 대해 무력 반란을 일으킨 것이 그 원인이었다. 로마 장군 디도(Titus)가 이끄는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성전을 유린당한다. 성은 돌 하나 돌 위에 남기지 않고 폐허에 이른다.
주후 70년 이후에도 유대의 독립을 위한 열심당의 두 차례 반란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주후 115-117년에 구레네(Cyrene), 애굽, 구브로(Cyprus),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 살던 유대인들에 의하여 로마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으나 트라얀(Trajan) 황제는 상당한 살육을 감행하여 이것을 진압하였다. 주후 132-135년에 바르 코흐바(Bar Kochba, 별의 아들)가 주동이 된 반란이 있었다. 로마 하드리안(Hadrian) 황제는 이 반란을 철저하게 분쇄하여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있는 분산된 유대인의 남은 자들을 궤멸하였고 로마제국 전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혹독한 제한조치를 취하였다. 하드리안 황제는 성전 자리에 이교도(異敎徒) 신전(神殿)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7세기에 무슬림(Moslem, Muslim, 이슬람교도)이 이곳에 왔을 때 성전산은 폐허로 변한 쓰레기로 덮여 있었다. 이들은 이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성전산의 큰 바위에서 무함마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691년 황금사원으로 불리우는 바위 돔을 건설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옛날 성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슬람이 세운 황금 성전 모스크이다.

V. 세대주의적 성경 해석의 위험성

오늘날 이스라엘의 성지(聖地) 예루살렘에 가보면 솔로몬의 성전도 헤롯의 성전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 이후 40년인 주후 70년에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하여 훼파되었고, 그 후로 돌로 지어진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 역사적 예루살렘 성전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더 이상 의미 있지 않다.
유대인들이 초대교회의 집사 스데반을 처형하기 전에 고발의 내용에서 다음같이 말한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행 6:14).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행 7:49-50). 이는 구약 이사야의 예언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사 66:1-2a).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성전이란 성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전이요, 신약의 신령한 성전인 교회로서의 성전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초대교회 공동체로 신령하게 변모(變貌)되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베드로도 그의 편지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베드로는 여기서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너희가 이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 복음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것은 세대주의적 성경읽기(무디 및 스코필드 성경 등)로 예루살렘을 유대민족에게만 연관시키는 해석이다. 그리하여 세대주의자들(dispensationalists)은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예루살렘에 관한 모든 성경의 기록을 민족적 유대와 유대주의적 성지(聖地)와 관련시키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구속사적 의도를 유대 민족주의적으로 편협화 하는 시도이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영한 (기독교학술원장 / 숭실대 명예교수)

이근삼의 개혁주의적 문화신학 (8)
‘광주 성경신학학술원’ 한경진 대표,‘잠언’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성 연구로 목회학 박사 학위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