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4-06-11 15:2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마르다의 믿음과 마리아의 믿음(눅 10:38~42)


마르다와 마리아는 형제간으로 마르다는 언니요 마리아는 동생이다. 예수님이 두 자매의 가정으로 초대받았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무엇인가 대접하기 위하여 분주하였고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하심에 겸손히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두 여인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마르다의 믿음은 예수님을 손님으로 대하는 믿음이요, 동생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대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마르다의 믿음과 마리아의 믿음을 잘 분별하여야 한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믿음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마리아의 믿음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하면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믿는 성도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시는 마르다의 믿음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마리아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의 교회도 예수님을 마리아처럼 주인으로 모신 교회가 바른 교회요 예수님을 마르다처럼 손님으로 모신 교회는 바른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생의 주인으로 모신 마리아의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을 때는 주인 되시는 예수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을 때 우리는 그 예수님의 진정한 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신앙은 주님의 말씀을 100%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 말씀에서도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자 그의 발치에 앉아 그 주님의 말씀을 경청케 된 것이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을 주인이 아닌 자신이 초대한 손님으로 여기고 그 손님을 대접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예수님 말씀을 경청하는 동생 마리아를 향하여 불평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손님은 내가 모실 수도 있고 안 모실 수도 있다. 손님은 주인이 아니기에 대접을 잘할 수도 있고 푸대접할 수도 있다. 오늘날 이 땅에 있는 많은 성도와 교회가 예수님을 손님으로 여기고 어느 땐 가까이하다가도 어느 땐 자신의 생각에 따라 푸대접하기도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셔서는 안 되고 참주인으로 모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이 바른 믿음일 것이다. 예수님을 손님으로 여기는 믿음은 상황 따라 어느 땐 가까이하고 또 어느 땐 멀리하기도 하는 마르다의 믿음을 과감히 정리해야 될 것이다.
요한복음 12장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참주인이시기에 어떤 비난에도 자신이 가진 귀중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을 참 주인으로 모신 감동의 스토리가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는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손님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참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를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다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예수님을 손님으로 여기는 마르다 믿음을 회개하고,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이며 내 교회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임을 다시 결단하는 믿음을 가지자고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이다. 아멘.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호 목사 (기감 전감독회장 / 도봉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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