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4-08-13 09: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 호칭과 성경의 논리적 통일성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특별계시 기록을 통해 보여준 진리의 말씀이다. 이러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의 역사나 사상에서 기인한 인간 기록물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계시다. 여기서 성령 감동은 인간 기자의 성경 기록에 대한 직접 관여를 전적으로 부정하며, 신적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함을 강조한다는 뜻이 된다. 이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라고.
그런데 성령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진리로 확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관된 논리로 통일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성경 연구가들은 성경 전체의 근본적 기록 목적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적인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 성경의 통일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엽적인 사건 이해 중심으로 성경을 파편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는 성경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존재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의미를 성경 전체에 걸쳐 통일된 의미로 이해할 때 증명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뜻으로 성경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 주어이기 때문이다. 본 기고에서는 이를 박용기 목사의 『의미분석 성경개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 전체를 연관 짓는 논리적 일관성이 여호와 호칭과 무관하다면 성경의 통일성 확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 기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경의 통일성은 여호와의 존재 확증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성경 연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증명 문제는 기록한 말씀의 완벽한 논리적 증명에서 가능하다. 논리적 증명은 전제와 결론의 관계로 단정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언약과 성취의 관계’라고 할 때 이는 구약이 전제가 되고 신약이 결론이 된다는 말이다. 언약과 성취의 이러한 논리적 관계가 증명되면 성경은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존재의 계시 사건 기록이 된다. 가령 예수께서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구약 성경 전체가 증거하고 있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 성경 전체가 영생(永生)의 주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취에 관한 증거 말씀이라면, 이는 논리적으로 전제와 결론이 연관되므로 ‘진리’가 된다. 즉 성경 주제는 다름 아닌 여호와의 존재 확증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된다. 우리는 동일한 의미의 예를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에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상에서 최종적으로 증거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7장 2~3절에서는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여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행 17:2~3)라는 말씀을 증거하고 있다. 바울은 구약 성경의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구약이 언약하고 있으며(전제), 언약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예수께서 그리고 바울이 확증하고 있다(결론). 이처럼 성경은 구약은 언약이므로 전제가 되고, 신약은 성취로서 결론이 되므로 여호와는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증명이 완성된다.
이러한 ‘전제로서 언약’과 ‘결론으로서 성취’ 구조를 다른 부분에서도 살펴보자.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고 증거했다. 이 내용은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열방과 그 왕들을 굴복시켜 다스리는 일은 여호와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여 명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사건이라는 뜻으로 증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시대의 역사를 이미 여호와께서 태초에 만대를 작정하여 명하셨고 이를 마지막까지 반드시 성취하는 분으로 증거한 것이다. 그리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때 그 징조에 대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고 증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메시아의 성육신이 여호와께서 양 무리를 먹이는 목자가 되는 사건임을 증언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0~11)라고도 예언했다.
물론 이러한 약속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세례요한의 출현으로 성취되었다.(마 3:) 다음 여호와께서 목자로 임하실 것에 대한 예언을 사도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말씀으로 증거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 자체가 태초의 언약이 성취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창조 사건과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이 창세전에 이미 확정된 사건에 근거를 두는 구조는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존재 확증과 직결된다. 이처럼 여호와 호칭에는 ‘창세전 근거’와 ‘창조 시 결론’이라는 논증 구조, 즉 전제와 결론이라는 논리적 구조를 담고 있다.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의 주창자인 박용기는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영존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영원한 뜻에 따라 영원한 원형의 계시세계를 창조하여 운행하신다(마 6:10; 계 21:∼22:). 이를 근거로 유한한 실체의 계시세계를 창조하여 운행하시므로 ‘여호와 계시’ 곧 그의 존재와 속성을 특별히 문자기록으로 계시하신 것이다.(성경) 그리고 마지막 아담 메시아에 의해 계시를 완성시켜 다시 영원한 원형의 계시세계로 돌아가게 하신다.[박용기, 『성경강론』(성남: 진리의말씀사, 2018), 17]

이와 같이 여호와의 존재 확증은 논리적으로 전제와 결론, 성경 구조로는 언약과 성취의 구조 속에서 가능하다. 여호와 호칭 이해는 그의 존재 확증은 물론 성경권위를 성경 기록 구조 그대로 증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인용을 통해 논리적 구조를 더 설명해 본다면, ‘영원한 원형의 계시세계’가 근거라면, ‘유한한 실체의 계시세계’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 세계에 드러난 모든 사건이 여호와의 존재 계시 사건이라면, 창세전 정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여호와의 존재 계시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호와 존재 확증은 성경의 논리적 일관성에 근거한 구조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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