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교개혁 정신의 반역 XII : 성경에 대한 무지(無知)에 뻔뻔한 한국 교회!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18~21).
앞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예언한 내용이다. 주전 605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첫 번째 침략을 당하기 전 적어도 150여 년 전에 남쪽 유다에 미칠 재앙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다. 거짓과 죄악을 일삼는 남쪽 유다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자신을 택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한다. ‘어디 재앙을 내리려고 한다면 어디 한번 해 보시지!’하는 빈정대는 말투다. 사실 남쪽 유다는 이 예언이 있은 후 바벨론 제국에 의해 1차는 150여 년에 침략당하고, 완전 패망으로 이어지는 3차 침략은 170여 년이 지나야 성취된다. 우리의 판단으로는 이 예언을 한 즉시 남쪽 유다의 통치자와 백성들이 진노를 받는 것이 훨씬 하나님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 이렇게 비교적 긴 시간을 주는 이유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 목적과도 연관된다. 유다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또한 회복하신다는 내용 자체를 알려주려는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확증과 그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택한 유다 백성에게 알려주시고 나아가 이방인 중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널리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섭리 방식이다. 이방 족속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방식이 택한 백성 남 유다를 멸망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남쪽 유다의 패망은 이사야 예언 시작 700~750여년 전 모세 당시에 약속된 바(레위기 27장과 신명기 28장) 있다. 이사야의 예언 상황은 언약대로 성취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재차 패망을 언약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뜻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 계시는 바로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것을 계시한다’는 뜻이며, 이것을 섭리하시는 방법과 절차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진노와 패망의 과정으로 향하는 남 유다의 범죄 과정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고 한다.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양상이 바로 분명한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의도를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부인한다. 모른다면 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전하려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선을 악이라고 전하고, 하나님의 악을 선이라고 전한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선을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받아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어디 한 번 진노를 내려 보라’고 비웃기까지 한다. 그래서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 사악함의 극치를 보인다. 마치 구약의 언약대로 오신 메시야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유대인 장로들이 바로 면전에서 모욕을 주고 돌을 들어 치려하는 경우와 같다. 백성들은 장차 그 나라가 망한다는 말보다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듣기 좋을 것이 뻔하다. 언약하시고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빛 되신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달콤하게 거짓말을 하는 유대의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다.’ 분명히 망한다는 선지자의 진리를 거듭 거듭 부정하며 바른 진리를 거듭 알려주는 선지자를 핍박한다. 반대로 비진리를 전하는 선지자를 추앙하고 존경한다. 여호와의 진리를 애초부터 받지 못해서 망한다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지만, 바른 예언의 진리를 받았지만 그것을 완강하게 부정하다 멸망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이며 처절한 심판 상황임에 더욱 놀라게 된다.
진리와 비진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국 교회, 진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속임수인 비진리의 수렁으로 점점 끌려가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 무엇이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고 이에 대한 관심도 점점 줄어드는 한국 교회, 앞서 살펴본 예루살렘 멸망 직전의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진노의 예고와 이 경계를 왜곡하는 유대인의 양상과 많이 닮아있다. 이러한 한국 교회도 분명 창세전 여호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과정 안에 있다. 현상적 원인을 하나 찾아본다면, 사단이 더욱 교묘하게 한국 교회를 비진리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처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 쉴 만한 곳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다시 나온 집으로 돌아가는데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는 것(눅 11:24~26 참조)과 같은 양상이다.
욥기 초반부(1~3장 참조)의 기록처럼 사단은 분명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사단에게 의로운 욥을 맡긴 경우와는 다르다. 욥처럼 버틸 힘도 없고 사단의 유혹에 거듭거듭 쉽게 무너질 진리에 너무도 취약한 곳이다. 웅장하고 요란하며 큰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속화에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의 기업처럼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다. 부패하고 사악해져서 성경권위를 대놓고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속인다. 그야말로 일곱 귀신의 지배가 한국 교회를 장악한 듯 보이는 처절한 상황이다. 우리의 교회는 진리의 빛에서 더욱더 가려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교계 소식을 접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너무 빠르게 비진리와 세속적 탐욕으로 무너지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식을 앞 다투어 거행하며 ‘오직 성경으로’를 외친 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교회의 본질인 성경진리와 성경권위의 추락에는 큰 고민 없이 엉뚱한 문제에 핏대를 세운다. 성경권위 때문에 화내고 분노하고 시위하고 단식하고 삭발하는 성도는 극히 적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울부짖던 기도원들이 흉가(凶家)로 변한 지 오래다. 성경에 대한 자기 무지가 부끄러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도를 정죄하고 고소하고 비난하는 데 너무 빠르다. 예루살렘이 망해야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우리 한국 교회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일까?
19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20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사 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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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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