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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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5 19: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VII : 성도들의 성경 무관심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3~17).

인용한 구절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말씀들이다. 이 구절은 적어도 한국 교회 성도들이라면 대부분 암송하고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기독교 진리의 원천인  성경에 관해 교육을 받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구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부분은 3장 16절에 집중해 있다. 디모데후서 전체의 의미까지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인용한 단락이라도 심사숙고하여 성경을 들고 교회에 오고가는 이유 정도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잠시 인용한 본문을 따라가 보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디모데에게 편지한 내용이다. 에베소 지역에서 교회를 돌보던 신앙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성령 감동으로 기록하여 전한 진리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디모데후서는 바울 사도의 ‘유언’이라고도 한다. 로마 감옥에서 사형 일자를 받아놓은 상태에서 기록했다고 한다.

신앙으로 낳은 어린 디모데에게 다가올 시대 상황을 알려준다.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더욱 극악해진다는 예언이다. 악한 자는 더 악독해지고 속이는 자들은 더욱 간교하게 속이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다. 전자가 교회를 향한 외부에서 가하는 박해와 고난이라면, 후자는 교회 내에서 일어날 성도 간의 속고 속이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러한 고난과 혼란의 시대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바로 진리에 대한 배움과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려준다. 나아가 누구에게 성경을 배웠는지 알라고 분명히 지적하면서 그 성경 진리의 내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믿음과 그 믿음에 의한 구원의 지혜임을 밝혀준다. 그러므로 그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동 받은 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므로, 교훈과 비진리에 대한 책망 그리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정의롭고 정당한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성경 교육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완수하게 한다는 약속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본문 내용을 뒤집고 있는 한국 교회의 참담한 현실과 성경의 진리를 외면하고 나아가 성경의 진리를 매몰시키고 있는 우리 교회들의 현장 증거 사진 수백 장이 뇌리를 스쳐간다. 본문을 반대로 읽어보면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속고 속이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임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진리의 전당인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리사욕에 눈먼 정치 목사들이 그런 악한(惡漢)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속보다 더 지저분한 패거리를 짓는가 하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작금에 일어난 일이다. 굴지의 장로교 대형 교단 소속 신학교가 연초에 용역 깡패들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 현장에서 사도 바울의 유언에 담긴 성경 진리 한 구절 한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켜가야 한다는 가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도들도 그러한 상황에 분통만 터트리지, 대안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다. 또 다른 대형 교단의 총회는 불법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교회 세습 사건을 과반수 득표로 옹호해 주고 있다. 이들에게 과연 그리고 이것을 지켜 보는 성도들의 뇌리에 ‘오직 성경 진리만’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될까?

성경을 잘 몰라도 뻔뻔스럽게 목사 행세를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정체불명의 신학교를 몇 개월 다니고 목사 안수를 받은 자들도 자기 신분을 덮을 목적으로 무당 같은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올라선다. 목사들은 성도를 속이고 성도들은 성경 진리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께 헌금하고 빌면 복 받는다는 황당한 사기의 늪에서 허덕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누구한테 성경을 배웠는지 우리 교회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사가 아니더라도 장로와 권사 그리고 안수집사 정도 되면 교회 후배 누구에게라도 성경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직분이면 교회에 다닌 햇수는 적어도 15년을 훨씬 넘는다. 장로로 권사로 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한 명의 후배에게라도 성경 진리를 정성들여 가르쳐 본 직분자들이 흔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전달하느냐가 개신교 특히 장로교의 ‘절대표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더라도 목사한테만 잘 보이면 장로와 권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진리를 모르고도 뻔뻔하게 교단에 올라가는 자들이나 그러한 목사 밑에서 성경 진리를 전혀 모르더라도 장로나 권사가 되면 ‘가문의 영광’ 쯤으로 아는 교인들은 결국 같은 분류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경 진리로 바르게 양육 받는 진리의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차라리 거북이 등짝에서 털을 찾는 것이 더 쉬울 터다.

이러한 성도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인간의 문서 조합인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러하든 어떠하며 저러하든 어떠하랴, 교인으로서 마지막 최고 권력(?)인 장로나 권사가 되면 그만인데 말이다. 당회원이나 여전도회 임원이 빨리 되어야 목사한테 더 충성할 수 있거나 그동안 목사한테 서럽게 당한 것을 성도들과 힘을 모아 되갚아 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자신의 사리사욕과 직접 관련된 이권이 있든가. 이렇게 성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로나 권사가 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고 수천만 원을 교회에 헌금했는데 그냥 쉽게 물러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세력 다툼으로 세상 법정에는 교회 관련 고발 건수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교회 분쟁 관련 전문 로펌이 생긴 지는 오래되었다. 성경 진리를 바르게 알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바른 교훈을 받아 사람보다 하나님의 책망을 더 두려워하고 항상 진리의 말씀으로 되돌아오고자 하는 의(義)의 길을 가는 것에서별 관심이 없으며 거의 사라지고 있다. 교회 재산이 늘어가는 데 비해, 성경을 가르쳐 차세대에게 성경 진리를 물려줘야 하는 학교인 교회학교는 그만큼 더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젊은 청년 세대들에게는 각각 그 ‘롤모델 (role model)’이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인물에 준하는 대상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어쩌면 세속의 어떤 인물보다 더 쉽게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그 모델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마땅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 진리를 사수하고자 분투하는 그야말로 진리에 투철한 신앙의 선배를 만나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는 직분자들 향해, 직분자들은 목사를 향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는 거의 모른다. 성경 진리에서 떠났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래 바울 사도의 기록을 더 읽고 생각해 보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은 성경 진리에 투철하면서 후배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주 안에서 진리 위해 봉사하고 바른 말씀을 전하는 ‘신앙’ 선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성도 개개인이 얼마나 성경 진리에 관심이 있고 그 성경 진리를 세상의 어떤 욕심과도 타협하지 않고 순수함을 지키는지, 그것이 교회 존립의 유일한 고유 목적이다. 선배 성도들이 성경 진리를 외면하는 순간 몇 명의 사악한 거짓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귀한 신앙 후배들을 먹잇감으로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자주 교회에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성경을 들고 수십 년을 오가는지, 그리고 그렇게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말씀 한 구절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지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성도들의 성경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그 성도들의 자녀를 사악한 지도자의 손에 바치는 꼴이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VIII : ‘징계’를 간구해야 할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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