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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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21 13: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세상사 간파의 혜안(慧眼) 회복하기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 47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요 11:45-52)


인용한 본문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를 예수께서 살리신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죽었다 살아난 표적을 본 많은 유대인들은 점점 더 예수께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게 되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권력자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이 결집하는 것에 가장 민감하다. 종교권력 집단들이 생각하기에, 만약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다면 로마 제국은 가만있을 리가 없다. 백성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로마로부터 부여받은 종교 권력자의 지위도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은 생존의 방법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일 수 있는 기발한(?) 살해방법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없애면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자신들의 신변과 신분 안전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당시 예루살렘성에는 예수님을 로마인의 손에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까지 알고 있는 정보가 이른바 역사적인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너무도 놀라운 의미의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을 때 특히 유의를 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상 어떤 역사 기록에도 나올 수 없는 의미 부여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에 성경이 왜 유일한 등대이며 왜 성경진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이 사건에 담겨 있다. 본문에 나온 사건의 흐름과 이에 대한 성경 자체의 해석을 더 따라가 보도록 하자.

대제사장 가야바는 온 민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예수님 한 분만 제거하면 종교 권력자들은 여러 가지 이익을 보기 때문에 가야바의 제안은 완벽한 방법이 된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예수님을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로마 제국에도 자신들의 신임을 확인할 수 있고 유대인들에게는 로마로부터 민족과 나라를 구하는 비책(祕策)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1장 51절과 52절은 상상할 수 없는 탁월한 해석을 보여준다. 50절에 보면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가야바의 말은 가야바가 자기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즉 가야바는 자신의 생각을 자기 의식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이 말하는 바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한 말이다. 단지 예수님을 제거하고 싶은 악한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해 낸 묘책이라고 여기겠지만 그러한 생각의 출처와 목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다. 51절과 52절에는 가야바가 말한 살해음모를 이렇게 해석해 주고 있다. 가야바의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있다고 해서 가야바의 예수님 살해음모가 의로운 행위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야바의 악행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그런데 가야바의 그러한 악한 의도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고자 이미 작정하신 뜻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섭리하신다는 데 놀라움이 있다. 피조물은 단지 자신이 듣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각기관을 통해 공감하면 이른바 객관적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팩트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체만을 안다고 해서 객관적 진리를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간파하지 못하면 어떤 사건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다. 가야바의 음모로 진행되는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의 계시 사건이며 그래서 대속 사역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인식 능력은 상식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자기 중심성인 주관성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더더욱 무능력한 존재다. 기독교인에게 지식의 본질은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와 그 보내신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달려 있다. 그 어떤 지식이라도 이것을 담지 못하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지식인들이나 권력자들처럼 성도들은 이러한 사실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식의 주인도 피조물이 결코 아니며 권력행사의 주체도 세상 권력자 자신이 결코 아니다. 아래 본문은 로마 제국주의자의 착각을 폭로하는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가 나온다.

8 빌라도가 (……) 9 (……)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요 19:8-11)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자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 질문한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디 소속이냐고. 예수님이 침묵을 지키자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고 놓아줄 권세도 있다고 한다. 이에 예수님은 빌라도의 권력이 허구임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진정한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주신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을 해할 수 없다’고. 세속에는 수많은 진리와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른바 우리 사회에는 현재 팩트 논쟁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검찰이 조사한 것이나 언론이 보도한 것, 그리고 판사가 판결한 것은 통상 진실이라고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든지 조작하고 왜곡한다는 것을 거의 매일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성경진리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또다시 하나님 말씀의 객관성과 불변성에 주목하는 계기를 맞길 바란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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