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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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15 10:3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절대평등’의 대상인 ‘지체’의 비밀 찾기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행 15:22-25)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지난해 12월 7일 발간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Does Inequality Matter 2022)’를 보면 한국은 상위 10%가 하위 50%보다 52배나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한국의 소득 수준과 비슷한 ‘3만 유로’ 지점의 서유럽과 비교하면 불평등 상황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매우 심각하다. 2021년 기준 소득 분위(分位)를 보면, 상위 10%가 전체 소득 절반에 달한 46.5%를 가져간 반면, 하위 50%는 16.0%만 가져갔다. 상위 10%가 가지고 간 것 절반 중에서 겨우 3분지 1을 50%가 나누어 가졌다. 그야말로 국가 경제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 붕괴 현상이다. 2021년 기준 상위 10% 1인당 소득은 15만 3200유로(약 1억 7850만원)인 반면 하위 50%는 1만 600유로(약 1233만원)로 약 14배나 많았다. 이러한 상위 10%가 차지하는 부는 나라 전체의 60%(58.5%)이며 하위 50%는 5분지 1에 불과한 5.6%이다. 상위 10%가 현재 보유한 부는 평균 105만 1300유로(약 12억 2508만원)이며 하위 50%가 현재 보유한 부는 평균 2만 200유로(2354만원)이며, 상위 10%가 무려 52배 이상 많다. 한국과 비슷한 3만 유로 지점의 서유럽 국가의 소득 격차는 프랑스는 7배, 이탈리아와 스페인 8배, 영국 9배, 독일 10배로 한국의 소득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 소득 격차가 보여주는 불평등 지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를 보면서 교회의 한 성도로서 ‘평등’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의 실체인 주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세속적 불평등을 뛰어넘는 ‘절대평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진지한 숙고가 필요하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신앙적 절대평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인간의 어떤 선택 사항일 수는 없다. 그리고 인간의 노력이나 인품이나 권력이나 경제력이나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래서 교회 문화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주종의 종속 관계, 명령 체계, 서열 문화는 반성경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이다. 교회의 정관이나 총회의 헌법이 인본주의적이며 세속적인 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제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평등의 대상인 지체에게 세상 권력처럼 명령하고 강요하는 강제력 집행의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가벼운 권면에서부터 ‘수찬정지’와 같은 강력한 교회의 명령까지 그 이면에는 형제에 대한 지체 의식보다는 집단의 이해관계가 지배적인 때가 훨씬 많다. ‘코람 데오(Coram Deo)’ 곧 ‘하나님 앞에서’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백성의 절대평등’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지도자들의 집단적 의결 과정으로 만든 기독교 문화를 지배하는 많은 법규들은 근본적으로 오류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주의 주 만왕의 왕’(계 17:14)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찬탈하는 오류에 항상 직면하기 때문이다. 교회 질서를 파손하는 행위에 대해 모든 성도가 얼마든지 함께 ‘노(No)!’라고 결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결의를 누군가에게 세상처럼 물리적 강제력으로 집행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강제력을 동원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아무런 조건 없이 창세전에 하나님이 확정해 주신 ‘절대자유’에 대한 침해이며, 세상 어떤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훼손할 수 없는 ‘절대평등’을 부정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한 사도행전 15장 22-25절에 보면 교회 생활의 질서에서 ‘절대평등’이 무엇인지 감지할 수 있다.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이방인 성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오래된 이방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상 숭배의 습관을 마치 복음의 자유처럼 행하면서 교회 내 분란과 무질서를 야기했다. 이에 유대인 성도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로 이방인 사도인 사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사도와 장로들에게 회의 소집을 부탁했다. 이에 총회가 개최되고 토론과 동의 절차를 거쳐 이방인 성도들도 모세의 율법이 아닌 사도들이 전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은혜의 복음으로 자유로운 지체임을 모든 사도와 장로들이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방인들은 유대인 성도들이 용납할 수 없는 ‘우상제물, 음행, 목 매인 죽인 짐승, 피 마심’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한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종교적으로 권위 있는 자들 중심의 가결이었지만, 사용된 용어를 보면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23절)이라고 한다. 사도와 장로는 주종 관계 곧 지배와 피지배 사이의 지배자 계급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평등’의 근거는 ‘형제’(물론 이 개념은 남녀 성 구분을 초월함)의 비밀을 아는 데 있다. 그리고 교회 지체에 대한 정의는 25절에 이렇게 나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들이다. 절대평등의 실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따르면서 생명을 아끼지 않는 복음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형제와 자매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성도를 지배하는 ‘절대평등’에 대한 가치를 상실하면 세상의 불평등 구조에 매몰당할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상대빈곤율’, ‘전체상대빈곤율 OECD 국가 중 세 번째’, ‘OECD 국가 중 일곱 번째 소득불평등’, ‘현격한 임금격차와 제한적 소득 재분배 국가’라는 말들은 세속 국가 대한민국을 불평등 국가로 규정하는 다양한 수치(羞恥/數値) 개념들이다. 세속 국가의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서 헤치고 나가 하나님 자녀로서 ‘절대평등’을 누릴 수 있는 절대자유는 세속적 사제 관계, 가부장적 혈육 관계 및 지배와 피지배의 주종 관계를 초월한 ‘교회 모든 성도의 형제 됨’의 비밀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8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8-12)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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