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북한 형제들의 사투, ‘공부=성경공부’
눈을 뜬 채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것은 분명히 찬송이었고 무엇인가 외우고 있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다. 그리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주여!’라고 부른다. 성경은 가져본 일이 없었다. 고정된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무엇인가 속으로만 웅얼거리는 할아버지의 소리는 늙은이의 노망 소리처럼 들린다. (……) 어쩌다 땅바닥에 십자가를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른 지운다. 어떤 할머니는 압록강 강변에 사는 친척 집에 쌀을 얻으려고 갔다가, 그곳에서 강 건너편의 빨간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그리고 주일 아침마다 십자가를 마음에 그리며 혼자만의 예배를 드린다.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병이 든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며느리에게 생명을 건 부탁을 한다. 할머니 부탁에 주변을 살피며 며느리가 한마디를 한다. “이제 말씀하시는군요. 저의 집안은 대대로 예수쟁이야요” 며느리 말에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었구나, 왠지 다르더라만……”.
평양에 사는 아주머니는 언니 보러 만주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본회 사역자를 만나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전화해서 “나 공부하고 있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성경공부를 공부로 말한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은 중국에 갔다 돌아온 이의 선물을 받으러 모여들었다. 아니 예수쟁이들의 손에 들려진 것은 찢어진 선물 포장지였다. 그 포장지는 성경을 한 장 두 장씩 찢어낸 것이었다!
북한의 지하교회. 그 교회엔 피아노나 키보드나 드럼은 없다. 아니 의자나 강대상도 없다. 물론 목사도 없고 건물도 없고 그냥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난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그렇게 흔적 없이 존재한다. 화장실에 매 주간 갖다 놓은 종이쪽지도 성경 말씀이었다. 모이는 곳이 헛간일 수도 창고일 수도 있다. 지하에 들어가서 모이기도 하지만 그곳 또한 언제 만날지 모르는 예배당이다. (……) 목사나 선교사 없이 살아온 70년대 초기에는 그래도 예수님을 아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유일한 복음의 전파자 역할을 감당해 주고 있다. 십자가를 땅바닥에 그리다 그만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는 성도는 얼마든지 있다. 소련 영화의 한 장면에서 십자가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려 혼났다는 성도도 있다. (……) 한두 명이 모인 지하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27명이 모이는 곳도 있다. 숲 속에도 땅굴 속에도 있다. 오늘의 북한지하교회 모습이다.
<자료출처: www.cornerstone.or.kr > 선교이야기 > 이삭칼럼 > 17950 북한지하교회 모습입니다!>
그립고 사랑하는 형제들, 북한 지하교회 형제들의 삶이다. 아니,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죽음과 신앙을 바꾸며 단지 붙어 있는 목숨을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마냥 북녘 땅만 쳐다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원고랍시고 쓰고 있는 필자의 모습이 그냥 싫다!
도청당해 붙잡힐 수도 있기 때문에 ‘나 공부하고 있다’는 말로 ‘성경공부’를 대신한다. 공부는 성경공부밖에 없으며 아니, 그 형제들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그것밖에 하고 싶은 것이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성경을 받아 붙잡힐 것을 우려해 찢어서 그것을 포장지 위에 다른 포장지로 만든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고향 형제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준다. 받아서 읽고 화장실에 둔다. 돌려가며 읽는다. 상세하게 풀어서 가르쳐 주는 자도 없다. 기록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 성령께서 생명과 평안을 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소서 꼭! 반드시! 지척에 있는 저 처참한 형제들이 들고 있는 찢어진 성경 낱장과 이렇게 부요하게 풍요롭게 사치하는 자칭 성도라는 나, 부끄러워 한여름의 이글거리는 태양보다 내 얼굴이 더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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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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