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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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0-11 09: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로서 가정교회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강조는 필자 주)

인용한 말씀은 로마 감옥에 수감 중인 바울 사도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딤전 1:1)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던 어린 목회자 디모데는 교회 내 많은 거짓 진리와 투쟁 중이었다. 그리스 잡신 신화, 율법주의자, 교회 내 음행하는 무리들, 거짓 과부, 거짓 직분자, 우상숭배자, 술꾼들, 혼인을 부정하고 식물을 금하는 금욕주의자 등과 진리 싸움을 벌이며 몸도 병들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바울 사도가 3년 동안 성경강론하며 세웠던 에베소 교회는 몰락의 길을 가는 상황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울 사도에게 임한 진리의 성령은 디모데에게 그렇게 비진리가 난무하고 교인들의 삶은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 교회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하신다. 이하에서는 이 교회의 비밀을 우리가 생활하는 가정과 가족 관계 속에서 더 깊이 찾아보고자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몸과 우리의 혈육 나아가 관습과 법과 제도를 통해 연합된 생생한 삶의 터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출발이며 신앙인으로서 출발하는 곳임을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와 동일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육의 몸에 잉태되었고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나면서 육신의 가족 관계로 보면 장남으로 삶을 시작한다. 구약의 예언대로 나사렛 출신으로 불리면서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육의 부모 그리고 친족들과 이웃들에게 사랑스러운 아이’(눅 2:52 참조)로 성장한다. 앞의 상황은 육의 몸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정사의 단면이다. 하지만 ‘자라는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의 몸을 말하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지혜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은 육의 몸을 가진 부모가 보여주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분은 본성이 하나님이신 존재다. 본성이 하나님이신 영원하신 존재로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언약하신 그리스도이며, 출생부터 승천까지 그가 계신 모든 장소가 신적 영광의 계시를 보여주는 곳이 된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께서 계신 곳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집(oikos theos)’을 돌보는 사역을 한 곳이며, 이는 예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가 되셔서 ‘하나님의 교회(ekklesia theos)’를 통치하는 사역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잉태와 출생, 성장과 공생애 사역,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시는 모든 사역들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일어난 사건이었다. 어머니의 태, 말구유, 나사렛의 집, 광야와 들판, 바닷가, 선상, 방문한 곳곳의 개인 가정집, 골고다, 무덤 모두가 ‘하나님의 집’ 안에 있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통치하신 곳이며 복음 진리가 기둥과 터가 되었던 곳이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중심으로 통치하신 곳이다. 육신의 몸으로 거하시면서 절대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두세 사람이 함께하는 모든 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교회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였으며, 이러한 사실은 약속대로 보낸 보혜사 성령의 교회 통치를 통해 천상사역을 하는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4세기 말 로마제국의 국교가 기독교가 된 이후 묵살당하고 왜곡되었다. 국가-종교 권력이 허락하지 않은 곳은 교회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 법을 어기면 이단이 되고 이단의 말로는 추방, 재산 몰수, 사형, 참수, 화형이었다. 로마 가톨릭뿐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교권도 두세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신앙생활을 출발하는 곳인 가족 단위의 교회를 불법 집단으로 규정하고 이른바 교권이 허락한 장소와 특정 지도자를 벗어나면 불법과 이단으로 간주했다. 17-18세기 개혁파 교회는 가족 단위의 교회를 이단 규정은 물론 출교와 추방, 마녀재판의 희생 제물로 삼았다. ‘하나님 집-하나님의 교회’의 출발인 가정교회를 탄압했다. 이러한 서구 개혁파 교회의 전통과 법을 받아들인 한국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주일날 특정한 장소에 나오지 않으면 이른바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교단의 이름으로 정상적인 교권으로 자부했던 교회들이 가정에서 부모가 성경 진리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준 것도 아니다. 현재 세계 교회처럼 한국 교회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고 가정교회라는 말은 선교적 차원에서 혹은 목회의 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디모데처럼 외조모와 어머니 손에 교회 지도자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나의 사랑하는 책’ 성경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한국 교회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성경을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할 수 있는 부모를 진리로 양육하는 교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니고 장로와 권사 직분을 받았으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역설하는 부모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도행전 예루살렘 교회부터 신약의 모든 교회는 어떤 대중적 모임의 교회가 아니었다. 예루살렘 교회도 ‘집(oikos)’에서 떡을 나누며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성전에 모여서 사도들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이웃들에게 받은바 진리의 말씀을 전했다. 사도 베드로가 초청받아 갔던 이탈리아 군대 백부장 고넬료의 집도 자신의 가정에서 베드로의 성경강론을 들었다.(사도행전 10장 참조) 로마로 이송된 사도 바울도 셋집을 얻어 스스로 가정교회를 통해 사역했다.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40여 군데 가정교회 이름이 소상하게 나온다. 그리고 바울 사도 서신서뿐 아니라 요한1·2·3 서신서 수신자도 가족과 친족 내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였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교회였다.
앞에서 인용한 말씀을 통해 ‘가정교회(oikos ekklesia)’를 정의한다면, 가정의 소유권자이신 ‘하나님의 집(oikos theos)’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 교회(ekklesia theos)’다. 성도의 생활 터전을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교회로 여기지 못하는 교회는 성경적 교회가 아니다. 창세전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엡 1:3 참조)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난 자일 경우, (출생의 배경과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한 그 장소에서, 자라난 그곳에서, 그리고 오늘 여기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실존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집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가족 관계와 삶의 현장을 전통적인 제도권 교회들은 교회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또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교회임을 진리를 통해 알려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교회의 부흥과 개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진리를 사모하는 가족과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가정교회 곧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곳,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 지체들의 연대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가정교회다. 이러한 교회를 고려하지 않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공허하며 허구적이다. ‘진리의 기둥과 터’는 바로 행과 불행, 희극과 비극이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우리가 몸담은 지금 여기 이 상태와 상황에서 시작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살아가셨고 사도들과 초대교회 진리의 선배 동역자들이 그랬다.
바울 사도는 육의 몸을 초월한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를 확신하면서 진리로 양육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디모데를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이라고 부른다. 자녀의 비밀은 비록 부모와의 혈육관계로 시작하지만 가족에게 성경진리로 기둥과 터가 마련될 때 그곳은 혈육을 초월해 모든 사람을 부모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곳이 된다. 바로 이 출발이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로서 가족이다. 이러한 가족을 보호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일 수 없다. 적그리스도와 사악한 이단들은 가족 관계를 이간질하고 가정을 붕괴시킨다.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교회를 폄하하는 기독교 교육은 허구이며 비진리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며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며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하노라(딤후 1:3-5)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환난 중 개혁자의 기도
예정론과 가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