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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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3 19: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IX: 적그리스도적 ‘번영신학’ 청산하기


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호 9:10, 12, 14~16). 


여호와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언약하신 대로 여로보암을 왕 삼아 북이스라엘을 건립하게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나라 명까지 북으로 가져간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에 수도를 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할 산당(山堂)을 짓고 우상을 만들어 세우며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의 사람을 제사장으로 선출하여 자기 멋대로 여호와의 절기를 바꾸며 불법을 자행한다. 이렇게 북이스라엘은 건립 초기부터 불의(不義)의 길을 간다. 비록 여로보암이 세운 나라가 여호와의 언약에 근거하지만 여로보암의 길은 남유다에서 이탈한 불의와 범죄로 이어지고 그 나라는 결국 앗수르 제국에게 멸망당한다.

그런데 멸망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패망을 확정해 놓았지만, 과정에서는 번성하고 번영을 누리게 하신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하다고 하는 아합왕과 간교한 여인 이세벨 시대를 보면 일시적으로 북이스라엘 정치체제가 안정되었으며 주변 나라에 맞서면서 북이스라엘의 지위를 잘 유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합왕 전사(戰死) 후 이세벨을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처참하게 죽이면서 왕이 된 예후왕과 그를 잇는 자손들은 산당제사와 우상숭배로 불법을 반복하면서 북이스라엘 건립자인 여로보암의 길로 가고 있었지만, 그의 가문은 5대가 이어진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한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당시는 예후의 후손 여로보암 2세가 집권하던 시대가 된다. 그때 북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하여 솔로몬이 지배했던 북쪽 경계까지 모두 회복했을 정도로 겉보기에 강하고 부한 나라로 보였다. 이 시기로부터 곧 멸망할 나라이지만 과정에서는 심히 착각할 정도로 북이스라엘은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처럼 보인다. 인간 판단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번영하고 있지만 그것은 망하고 있는 과정임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멸망의 과정을 섭리하시되, 풍요한 상황을 줌으로써, 인간이 그 멸망의 과정을 결코 알 수 없도록 하신다.

본문과 관련해서 더 보면 여로보암 2세 당시의 상황에 대해 북이스라엘은 멸망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나날이 번성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멸망시킬 앗수르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이미 시작하셨다. 북이스라엘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에 대해 지적하면서 아이를 밸 수 없는 태와 태어나더라도 살 수 없도록 젖 없는 유방을 주겠다는 진노를 예고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반역에 대해 자손들이 태어나지만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처참하게 죽이겠다고 하신다.
이른바 인간의 욕망을 기독교의 진리로 악용하고 있는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 gospel of success, prosperity gospel, the health and wealth gospel)이 한국 교회를 처참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성경적인 주장과 불법의 과정을 많은 한국 교회 목사들과 성도들은 그런 목사와 교회를 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을 속이고 있으며 모순의 늪에서 허덕이는 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욕심과 불의와 불경건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가로막고 있다(롬 1:18). 하나님을 이용해서라도 많은 돈을 벌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정말로 세상 종말론의 극치를 보인다. 아직도 한국 교회 성도들을 성경(요삼 1:3)의 악용으로 한순간 욕심과 불법의 늪으로 던지는 한마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야 한다’는 말은 더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것을 이용했던 목사가 속임과 불법과 탈세를 일삼다가 세상 법정에서도 범죄 행위로 판정받으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번영논리의 ‘삼박자 구원’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교회를 등지거나 ‘가나안 성도’라 불리는 이들은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교회를 멀리하고 있다면, 지금 남아 있는 교인들은 아직도 뭔가 남아있을 법한 로또식의 한탕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연해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안정과 번영을 인간 욕망 실현의 정점으로 삼고 하나님마저 그 욕망의 ‘도우미’로 삼으려는 시대적 유행에 편승하면서 많은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세속주의의 끝장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교회와 성도는 각각 타인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으며 스스로 적그리스도임을 자처하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끝판왕’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 천 가지 사건들이 논리적으로 상호 연관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확증된다는 주장과 제안(www.ibt.or.kr)은 더 이상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유럽에서 5백 년 전 16세기에 터져 나온 자유와 해방의 환호성인 ‘오직 성경만’으로, 이 개혁파 신학의 전통이 140여 년 전 무지의 땅인 우리 조선에 전해졌다는 것은 어떤 역사적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 하지만 이 고귀한 가치를 이제 우리 스스로 ‘돈 잔치’의 제물로 쓰고 있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구체적 성취밖에는 없는지?
   

4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4~8, 10~11).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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