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사에게 아멘’에서 ‘하나님께 아멘’으로!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지니라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5~25).
위에 길게 인용한 본문은 시내광야에서 40년 동안 자라고 태어난 출애굽 차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이루어질 언약을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차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곳에 정착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확인해 주시면서 그곳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매우 엄격한 저주의 말씀으로 선언하고 있다. 열두 개 저주 선언으로 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응답할 것을 명하신다. ‘아멘’이란 히브리어는 ‘확증하다’, ‘지지하다’, ‘뒷받침하다’에서 파생한 형용사 혹은 부사어다. ‘확실한’과 ‘확실히’, ‘확고한’과 ‘확고하게’ 등의 뜻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사례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많이 사용하신 ‘진실로 진실로’이다. 당신이 아버지의 신성을 계시하시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하고 계시다. 앞 본문에 나타난 저주의 내용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우상 제작부터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 재산과 관련된 많은 저주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이 저주 선언을 하시면서 그리고 아멘이라고 답하라고 하신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신성 강조를 위한 ‘진실로(아멘) 진실로(아멘)’의 명법을 염두에 두고, 간단히 정리해 보면, 성경적 ‘아멘’ 응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에 대해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신적 권위의 계시 용어다.
물론 앞의 본문을 포함해 신명기는 예수님의 말씀처럼(요 5:39; 눅 24:44)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언약이다. 앞서 인용한 저주의 말씀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가족과 이웃에게 악독하고 부끄러운 범죄를 일삼는 인류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자신이 받으실 예언의 말씀이다. 순결한 제물로서 자신의 몸으로 아버지께 단번에 드리실 영원한 제사에 대한 메시아 언약이다. 우선 강조하고 싶은 이 본문을 사용해서 도덕적 강론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인간 특히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가 자신과 같은 형제인 성도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명령자의 위치에서 고자세로 하나님 이름을 빙자해 명령하겠다는 태도야말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요 찬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돌려야 할 성경적 ‘아멘’의 고백을 보면서 한국 교회에서 습관화한 비성경적 아멘 사용의 폐습을 떠올릴 수 있다. 목사든 성도든 많은 사람이 매우 경박하고 고약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반드시 고쳐야 할 교회 문화의 악습이 바로 아멘 오용으로 더럽혀진 한국 교회 문화이다. 목사들과 성도들이 남발하는 ‘아멘’, 그 광경들을 보고 있자면 분명히 이 일이 벌어지는 곳이 무슨 교회라는 명칭을 달고 있고 성도들 앞에는 성경책도 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목사, 장로, 권사 혹은 집사라는 기독교의 직분자 명칭도 분명한 그야말로 교회가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성경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말을 하고 그 말에 응답을 하고 있는 일이 벌어진다. 자신이 발설하는 말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분별하려는 것은 고사하고 성도들에게 자기 말에 대해 ‘아멘’을 강요하거나 유도한다. 금전과 관계된 말을 강조하여 성도들에게 ‘아멘’을 집요하게 끌어내는 장면을 보면 도저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개념을 연결시키기가 점점 불가능하게 된다. 목사의 말에 아멘 소리가 작은 것은 믿음이 없다고 정색하거나 아멘 소리가 작은데 하나님이 오시겠냐며 농담하듯 성도들을 우롱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면 성도들도 더 심하게 아멘을 남발한다. 들려주는 말들이 성경적이든 비성경적이든 상관없이 목사들의 말끝마다 ‘아멘’이라고 화답해 준다. 어떤 경우에는 아멘 소리가 너무 심해서 설교하던 목사가 ‘아멘’을 자제하라고 하면 그 말에 다시 ‘아멘’이라고 한다. 코미디 수준이며 진리의 전당이 오염되는 심각한 상황이며 예루살렘이 바벨론제국에 망하듯 망해야 하는 하나님의 진노 상황이다.
매우 신중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언약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해야 할 ‘아멘’ 응답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신적 계시의 권위 있는 ‘아멘’ 응답을 저질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우선 비성경적 목사들의,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무지와 경박함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또한 목사의 말은 하나님 종의 말이므로 무조건 순종해야 하고 그래야 천국도 가고 세상 복도 듬뿍 받는다고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성도들이 가세하여 만들어낸 비성경적 습관 중에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천박한 악습, 이것이 현재 한국 교회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처럼 들리는 ‘아멘’ 남용과 남발 현상이다. ‘아멘!’, 이 응답은 성경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신사 같은 베뢰아 사람들의 간절함과 같이 전달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그 말이 성경에 맞을 때 그것도 목사 앞에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만 해야 한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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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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