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허영적 교세(敎勢)’에서 ‘신령한 성전(聖殿)’으로!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類)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0~16).
인용한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불러 성전(聖殿)을 짓고 싶은 다윗왕에게 전하여 준 언약의 말씀이다. 잠시 내용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10절과 11절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한 곳을 정하여 안전하게 정주(定住)케 하고 평안케 하신다는 약속이다. 물론 살아계신 여호와의 이름을 보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토록 섬기게 할 성전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로 보면 여호와의 성전을 보존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와 평안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12절과 13절에서는 이러한 일을 다윗이 할 수 없다고 하며 그의 아들(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여 나라를 견고하게 하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왕위(王位)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13절 끝부분에 나온 언약, 곧 다윗의 아들을 통해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한다는 내용은 16절에 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13절의 그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다시 확정해 주신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내용이 바로 14절과 15절이다. 14절에는 범죄할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벌하신다는 약속이 나온다. (14절 본문의 ‘만약’이라는 번역은 맥락상 그리고 사전적 번역도 ‘~할 때’, ‘~이므로’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15절에는 14절에 약속한 백성의 범죄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만 멸망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은총을 약속해 주신 내용이 나와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 국가의 평강의 원천은 여호와의 성전 보호에 기초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 보호의 방법은 여호와의 주권적 섭리에 달려 있다. 그래서 여호와의 성전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즉 이방 나라의 무서운 침략을 받는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과 그 성전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그 결과 다윗의 나라도 영원히 보존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이러한 언약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그대로 성취된다. 그리고 천여 년 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의 실체로 이 땅에서 이루셨으며 이제는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성취하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그리고 재림 때까지 기독교 역사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실체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영원히 보존될 것을 확증하고 있으며, 이는 바로 3천여 년 전 다윗에게 했던 그 언약이 성취되는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영원한 천국의 한 실체로서 한국 교회는 한 때 일천만 성도를 훌쩍 넘는 번영의 시간에서 정점을 찍으면서 현재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온 세상의 지탄(指彈) 대상이 되어 있다. 로마 가톨릭의 중세 천 년의 암흑기와 비교될 정도로 한국 교회의 부패는 그 도를 넘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른다는 개혁파 대형 교단과 교회들의 거짓과 부패가 자꾸 중세의 그 불법과 범죄를 떠오르게 한다. 백주(白晝)에 드러나는 뻔뻔한 범죄가 연일 언론 매체의 뭇매질을 당하고 있지만 이제는 카메라의 집중도 사회의 비판도 아랑곳없이 뻔뻔함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듯하다. 우리는 앞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라의 분열과 북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남유다의 멸망 사건을 잘 알고 있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대로 성전도 완성했지만 이방의 온갖 우상 잡신들도 만들었다. 남유다가 망할 무렵 하나님의 진노는 정말로 무서웠다. 칼과 염병(染病)과 기근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온 유다 땅은 그야말로 황폐화시켜버린다. 기근의 진노는 부모의 살점이 자녀의 입으로, 자녀의 살점이 부모의 입으로 들어가는 참담한 사건까지 일어난다. 여호와의 성전은 남유다의 왕과 백성이 보는 앞에서 불타버린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했던 성전이 불탔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불길에 휩싸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무서운 하나님의 징벌은 오래전 모세 때 레위기와 신명기에서 약속한 바를 성취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 예언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택한 백성들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경악과 좌절, 처참함과 참담함으로 몰아갔다.
이방인과 구별되는 거룩한 백성,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선민(選民), 여호와께 홀로 경배했던 성민(聖民)의 특권 등등 모두 사라지는 패망의 역사가 남유다를 일순간 덮쳐버렸다. 여호와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며 여러 명의 선지자들이 분명히 알려주고 또 알려주었지만 그 살육과 파괴의 현장에서는 그 소리마저 듣기 싫어 남유다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 선지자들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여도 소용없으니 여호와를 버리고 애굽의 우상, 바벨론의 우상을 섬겨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이 모든 남유다 패망 말기의 상황을 보면 우리 주위에 저렇게 많이 모여 있는 하지만 성경진리 수호와 성도들의 영혼의 보호를 위한 노력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우리들의 교회를 자꾸 떠오르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교세 확장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권(利權)만 충족되면 교리이고 교단이고 정체성을 포기하는 교단과 교회들이 속출한다. 남유다가 겪어야 했던 참담한 상황, 유럽 교회가 겪었던 암흑의 천 년, 이것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곳, 세계 선교의 주역(主役)이었던 대한민국 교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일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절망만 높아가지만, 앞의 성경 말씀에서 고민했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천국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영원함은 불변이요 절대이며 무한임에는 틀림없다. 한국 교회는 부패해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그만큼 아니 그 이상 거룩하다. 연일 부패지수가 올라가는 한국 교회의 허영적 교세가 영원한 천국에 속한 신령한 성전의 순결 지수를 확증하는 계시가 되길 슬픈 마음으로 다시 애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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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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