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노와 징계 사이의 몸부림!
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10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12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 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겔 5:7-13)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유다가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최후 멸망당하기(주전 586년) 5~6년 전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 예언한 경고 내용이다. 물론 그대로 성취되었다. 비록 70년 후에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토(故土)로 귀환하기는 했지만 망하기 전까지 여호와의 진노는 정말로 무섭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피조물의 상식적 이해력과 판단과 감정으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 모든 판단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경악할 예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제국을 진노의 수단으로 사용해 남유다를 패망시키는 기간은 거의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1차는 주전 605년, 2차는 주전 598년, 3차는 586년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예언하던 시기는 2차 침략이 끝난 상황이며 예루살렘에 남은 유다 백성은 얼마되지 않았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흉한 모습이었다. 1차 침략 당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거의 약탈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벨론 3차 침략을 앞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침략당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혀주시고 바벨론 제국이 강하기 때문에 남유다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8~9세기 전 모세에게 약속했던 대로) 남유다의 범죄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분명하게 알려주신다. 결국 침략군에 의해 예언대로 처참하게 패망 당했기 때문에, 선지자를 보낸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고 얼마든지 반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패망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남유다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고민해 보면 성경은 인간 중심적인 문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 중심적 판단으로 충분히 납득하여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면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용으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제국의 2차 침략이 끝난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진단하고 진노하신다. 남유다의 부패가 이방인들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이방에게는 여호와를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백성을 침략하는 것을 그들도 조심하는데, 남유다는 이방인보다 더 부패하여 여호와를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러운 소굴이 된 남유다를 반드시 멸망시킬 것이며, 그 멸망의 방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아버지를 잡아먹게 된다. 최소한의 긍휼도 베풀지 않고 진멸하겠다고 하신다. 물론 그렇게 성취되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죽이고 남은 자는 기근으로 멸망하고 또 남은 자는 칼에 죽인다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뒤를 따라가며 칼로’ 죽인다고 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보호하고 다윗 왕조를 보호하시겠다고 하신 언약의 신실성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그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일은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언약 자손을 죽이고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성전을 불태운 자들은 눈에 보기에는 바벨론 제국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진노와 심판이 자신의 살아계신 증거가 된다고 하신다.
우리는 이미 교회사를 통해 중세 천년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근대와 현대에 유럽 교회의 타락상도 많이 알고 있다. 그뿐 아니라 6·25전쟁 후 상상을 초월하는 한국 교회의 번영도 알고 있고 현재 그 한국 교회의 불법과 부정과 부패 그리고 성경권위의 추락과 교회의 우상화 및 교회 지도자들의 적그리스도적 행태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에스겔을 보내 남유다를 진멸하셨던 것처럼 당장 그 심판의 칼날을 이곳 한국 교회에 그대로 겨눈다고 해도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지경인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감히 생각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에 대해 우리는 요즘 다시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치졸한 망언과 망동에 대해 전 국민이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반일 감정은 다른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속한 한국 교회의 몰락과 부패 상황은 일본의 경제침략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경에 있다. 문서설의 침략으로 성경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신본주의 세계관은 세속적 인본주의에 공격당해 패배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세워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모습은 로마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점점 분간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축적된 교회 재산과 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한 도구보다는 이전투구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의 망동을 대하면서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라는 자들이 저지르는 주님의 몸 된 한국 교회에 대한 불법과 찬탈을 결코 간과할 수가 없다. 에스겔에게 일러주신 무서운 진노가 기다리는 걸까?
하지만 실낱같은 소망은 아직은 분명히 있다고 확신하고 싶다. 물론 그 소망은 불안한 우리 자신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흘러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래 히브리서의 약속은 매우 큰 의미있는 그야말로 복된 약속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생자가 아닌 친아들치고 징계를 받지 않는 아들은 없다고 약속해 주신다. 대한민국 전체가 일본의 말 한마디에 분노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 성도들은 세상 일과는 차원이 다른 한국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심판의 경고를 듣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징계라고 한다면, 중요한 것은 징계가 아니라 그 징계를 통해 당신의 존재와 그 능력의 영광을 선포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무서운 진노와 심판으로 극심한 징계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아들 된 무한한 은총은 무한한 자비와 긍휼로 보존해주시길 그 간절함만 더 커진다.
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히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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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세계관의 기초, ‘여호와 계시’ 신앙 |
‘음녀 바벨론’에서 ‘어린양’의 성전(聖殿)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