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적 ‘중보기도론’ 회복하기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5-7)
위의 본문에 보면 유일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자신을 바르게 알려주시는 유일한 방법은 인자(人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중보자(仲保者)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지배한다. 결론부터 강조하면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인식의 통로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으므로 세상의 어떤 인식 도구나 정보 전달의 매체는 진리 인식의 특권과 권위를 결코 지닐 수 없다. 현재 우리 교회 문화에는 ‘중보 기도’를 남발하는 매우 비성경적인 행위 양식이 팽배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 진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가볍게 여기고 자신이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가 되어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발상은 그릇된 신앙이다 못해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대속 사역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단회적으로 모든 피조 세계를 위한 영원한 구속 사역을 홀로 완성하신 그 위대한 그리스도 사역을 거역하는 일이다. 이에 이하에서는 유일하신 중보자는 오직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으며 인간이 중보자가 되는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행위를 경계하고자 한다.
본문을 더 보면, 인자로 오신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는 성별과 신분과 계급을 초월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대속 제물이 되신 분이다. 중보자의 헬라어 어원 ‘메시테스’(mesites, mediator)는 우선 구약의 메시아 언약에 근거한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 구약에는 아담부터 시작해서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수많은 메시아 표상과 그림자들이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고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던 하나님의 메신저들이 있었다. 선지자들, 왕들, 제사장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 모든 인물들의 그림자 표상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적 능력과 영광으로 홀로 완결하였으며 그 결과 모든 중보 사역은 부족함 없이 모두 완성되었다. 남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언하는 영 즉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 사역의 위대함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며 이에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증거했던) 사도들과 그 이후에는 많은 복음 전파자들을 지금도 소명하여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할 때 천사들도 중보자로 사용했다.(갈 3:19-20) 그 천사들의 사역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중보 사역으로 인해 진리 전달 메신저 역할은 끝났다.(히브리서 1-2장의 ‘천사보다 우월한 그리스도 사역’ 참조) 나아가 구약의 레위 지파만 가능했던 대속 제사도 모두 완성되었다. 위의 본문 6절의 ‘속전’(贖錢)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틸뤼트론’의 사전적 의미는 감옥에 갇힌 자를 석방해 주는 금전(金錢)을 뜻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속전 곧 인류가 죄인으로 심판받고 멸망당해야 하는 죗값을 대신 지불하신 분이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이러한 완벽한 대속 사역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는 존재만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중보자’가 될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단번에 석방에 필요한 무한대의 지불금(exchange price)을 낼 수 있는 분만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이러한 대속 제물의 무한한 가치를 인간들이 필요로 따라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해서 그러하든 악의적으로 그러하든, ‘적그리스도적’ 불의에 동참하는 심각한 일이 된다.
목사를 비롯한 어떤 교인들도 중보자처럼 행세하면 안 될 것이다.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신적 권위의 말씀인 정확무오한 성경진리만 전달하거나 안내하는 것에서 모든 행위는 종결해야 한다. 성도가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해 주는 행위는 중보 기도가 아니라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대속 사역을 함께 더 깊이 깨닫게 되길 함께 간구하는 성도 교제의 한 행동 양식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해 준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참여하여 모든 성도의 머리이신 영원한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의 무한한 은총에 감사하는 찬양의 한 방식일 뿐이다. 잘못된 중보 기도의 오류에서 벗어나면 사람의 권위에서 자유롭고 그 결과 성도는 오직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 찾게 되고 오직 그분만 바라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세전 영원한 언약의 역사적 성취를 통해 이 땅에서 완성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중보자 사역의 위대함은 옛 언약의 모든 모형과 그림자를 종결하고 완결했다는 뜻에서 히브리서에는 ‘더 좋은 약속의 더 좋은 새 언약’(히 8:6,8,13; 9:15)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새롭다’는 것은 중보 사역이 피조물인 인간이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실 때만 가능한 ‘영원한 천국’ 차원에 속한 성질을 갖는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하늘에 속한 ‘새 언약’에 관련해서는 예레미야 31장 31-34절과 히브리서 8장 8-12절의 병행 구절에서 더 상세하게 참조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의 위대한 사역을 아래에서 모아본 본문을 따라가 보며 확인해 보자.
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 6 그러나 이제 그가[예수-필자 주]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히 8:5-6); 14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9:14-15); 22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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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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