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회 사역론 바로잡기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일하게 하시며 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훌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공교로운 일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수 놓은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공교로운 일을 연구하게 하셨나니 36:1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출 35:30-36:1)
길게 인용한 본문은 출애굽기 35장부터 40장까지 기록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일부분이지만 성경의 신적 권위를 가장 선명하게 제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의 기록이 성경이다. 사역이란 말의 시종(始終)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해당하는 개념이다.(롬 11:36 참조) 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사역을 말할 때 우선 구체적인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가령 목회자들이 통성명할 때 ‘어떤 사역을 하시느냐’고 묻는다.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궁금해서 물어보고 답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역’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교회 홈페이지에 소개하는 ‘교회 사역자’란에 보면 목사부터 부목사 전도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직원 명부를 소개하고 있다. 직원의 다른 말이 사역자란 뜻이다. 이렇게 일상화한 ‘교회 사역자’란 말은 신자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의 본질을 희박하게 하거나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게 만연한 생각들이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가로막고 있으며, 신앙고백의 유일한 목적인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진리 명제를 공허한 소리로 만들고 있다. 개혁파 신학을 공부하고 많은 신앙고백서를 신학교에서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서 그리고 목회 현장에서도 아무런 감각 없이 교회 사역자란 말을 사용한다. 당연히 사람이 교회 사역의 주체가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니다. 이에 근본을 다시 기억하고 인간이 ‘교회 사역자’라는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성경 본문을 숙고하고자 한다.
출애굽기 35장부터 40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규례를 수행하도록 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미 출애굽기 24장부터 31장에서 성막을 짓는 방법을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따라서 35장부터 40장에 나타난 내용은 언약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역이 잘 나타나 있다. 본문에 좀 더 충실하면 언약하신 내용과 성취하시는 사건의 중간에는 단절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절 사건은 다름 아닌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막 규례에 대한 재료와 설계도 그리고 모양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여호와께 받고 있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삼천 명가량 이스라엘 백성을 도륙하는 무서운 심판을 집행한다. 그러고 난 후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불러 두 번째 증거의 돌판에 율법을 주시면서 범죄 전에 수립하신 규례 언약을 실제로 수행하는데, 그 내용을 35장부터 40장에 기록하고 있다.(레위기 내용도 이 맥락에서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성막을 완성했으므로 제물과 제사 규례를 수행하신다.)
그런데 앞의 인용 본문에 보면 성막 규례의 수행자가 누구인지 너무나 선명하고 강하게 나타나 있다. 얼핏 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성막 완성 사역의 주체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분인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다. 간단한 명제로 나타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수립한 약속을 하나님의 신을 충만하게 하여 성취하시는 사역을 하게 하신다.’ 더 간단히 하면 ‘여호와께서 하게 하신다’가 된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을 구사하여 탁월한 성막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사역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별무소용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막을 위한 기본 설계와 전체 구상 그리고 손끝의 재능까지 모두 은혜로 주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기 때문이다. 금과 은과 놋을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지, 보석을 어떻게 깎을지 나무에 어떻게 새기고 깎아야 하는지, 청색 자색 홍색실은 어떻게 꼬고 어떻게 수를 놓아야 하는지, 어떤 연구를 더 해야 하는지 모두 여호와께서 하게 하신다고 본문은 강조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36장 1절에는 다시 한번 이 사실을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이라고 명토를 박는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사역’을 말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은 범죄다. 교회 사역의 주체를 망각하면 인간이 교회의 주인이 된다. 바로 적그리스도가 된다. 여호와의 사역을 망각하면 목사의 권위가 교회 권력이 되고 당회가 인간의 세력 집단이 된다. 교인 전체가 참여하여 직분자를 세우는 일에서 사역의 유일한 주체인 여호와 하나님을 배제하면 그곳은 더 이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일 수 없다. 인용한 본문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아무리 혁혁한 공을 세운 교회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신이 감동했다는 것을 망각하거나 배제하면 인간의 집단으로 전락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는 말씀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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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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