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의 절대 권위와 정경 확정의 섭리 과정(IV)
15. 중세를 지배한 성경권위: 맛소라 사본의 보존
갈릴리 해변 티베리아에 살았던 성경 본문 전수자들인 맛소라 학자들은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구약 본문에 모음과 낭독 부호를 첨가하여 본문을 표준화한다. 특히 벤 아쉐르 맛소라 가문은 8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5, 6세대에 걸쳐 티베리아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맛소라 사본은 ‘코덱스 카이렌시스(Codex Cairensis, 895)’이며 이 사본의 특징은 (맛소라 사본 분류 기준상) 전기 예언서들(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과 후기 예언서들(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12개의 소예언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책들은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벤 아쉘 가문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또 다른 중요한 사본이 ‘알레포 코덱스(Aleppo Codex)’다. 10세기에 완성한 이 사본의 중요한 특징은 구약 전체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현재 레닌그라드 공립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코덱스 레닌그라덴시스(Codex Leningradensis)’는 (현재도 진행 중인 최신 주석과 문헌비평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트트가르텐시아(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본문 전승 역사 이해를 위해 기억할 만한 코덱스(여러 책장을 한쪽 면으로 묶어 페이지를 붙인 책 형태의 필사본)로서 ‘코덱스 힐렐(Codex Hilleli)’이 있다. 이는 주후 600년경에 전승 작업을 했던 탈무드 학자 벤 힐렐(Moses ben Hillel)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다른 사본의 개정을 위한 기준이 될 정도로 아주 정밀한 코덱스였다. 이 코덱스의 독법(讀法, reading)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코덱스 무가(Codex Muga), 코덱스 제리코(Codex Jericho) 나아가 코덱스 예루살미(Codex Jerushalmi) 전승의 주요 근거 자료가 된다. 이 사본들의 역사적 가치는 주후 1세기경에 성경 원문 그대로의 본문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티베리아 맛소라 학자들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약 본문 전승 역사를 따라 12-13세기 중세 시대 유대교 신학과 율법학의 최고 권위자가 배출되는데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8–1204)이다. 그는 벤 아쉐르 가문이 전승한 사본을 가장 정확한 율법서의 ‘모본’으로 간주했다. 마이모니데스는 중세 유대교에서 성경과 율법의 권위를 가장 정교하게 정식화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본명은 ‘모셰 벤 마이몬(Moses ben Maimon)’이며 율법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수용한다. 저서로는 탈무드 논의를 체계화한 율법 대전 ‘미쉬네 토라(Mishneh Torah)’가 있으며 계시와 이성의 조화를 시도한 작품 ‘미혹된 자를 위한 길잡이(Guide for the Perplexed)’가 있다. 그는 아론 벤 아쉐르 전통을 반영하는 맛소라 본문 ‘알레포 사본’을 최고로 평가했다. 또한 율법(토라)의 구체적 실천을 매우 강조했으며 그래서 모음·강세·철자까지 포함한 정확한 본문 구성을 율법 준수의 전제로 삼는다.
그런데 마이모니데스에게 어떤 사본이 ‘정본(normative text)’인가는 단순 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적·신학적 문제’로 보았다. 다시 말해 단순한 학적 지식이란 어떤 사본이 더 오래되었는가, 어떤 철자가 문헌학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가, 역사적으로 본문 차이는 어떻게 발생했는가와 연관된다. 이러한 연구에 대해 마이모니데스는 앞의 연구 방향과 결과는 단지 지식과 정보의 오류만을 야기할 뿐이라고 한다. 즉 그러한 오류는 단지 학설의 차이로 남을 뿐이다. 하지만 마이모니데스는 토라(율법)의 본문이 단지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실천을 지배하는 법’의 차원임을 강조한다. 본문이 조금만 달라져도 계명 수가 달라지고 발음·강세 차이로 인해 율법의 구체적 적용 방식이 변경되며 나아가 잘못된 필사 두루마리는 율법의 본래 요구를 무효로 만들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가령 안식일 계명, 제사 규정, 정결 규정은 한 글자의 의미 차이가 실제의 행위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어느 본문이 정본(正本)인가’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가 된다. 이렇게 마이모니데스에게 토라는 단순한 법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신적 권위가 충만한 말씀으로 결코 왜곡해서는 안 되며, 부정확한 전승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인간의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본문의 정확성은 바로 계시의 신뢰성을 결정하며, 필사는 결코 인간의 판단과 취향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어떻게 보존하고 동시에 이에 철저히 순종하는가의 신학적 문제가 그 본질이 된다.
성경권위와 관련해서 평가해 본다면, 마이모니데스가 강조하는 본문의 정확성은 곧 정확한 히브리어 본문의 준수가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맛소라 학자들이 지켜온 전통을 학적 지식의 한 부분의 역사가 아니라 ‘계시 자체 보존의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정경(正經, Canon of Scripture)’이 아니라 ‘정본(正本, Authoritative Text)’의 문제를 제기하는 마니모니데스에게 정경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확정된 상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떤 본문이 가장 권위 있는(authorative) 정경 본문인가를 규정하는 것이다. 정경은 이미 하나님의 감동으로 확정된 상태로 하나님의 계시와 권위에 의해 공인·확정된 성경 문서들의 총체적 범위로 ‘어떤 책들이 성경인가’를 확정 짓는 문제라면, 정본은 정경으로 확정한 성경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권위 있는 본문이 무엇이며 이 본문을 어떤 필사 본문으로 읽고 지킬 것인가를 판별하는 문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성경본문 전승과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마이모니데스는 본문비평적 사고의 선구자로 평가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 성경 권위란 ‘추상적 영감 교리’가 아니라 정확한 히브리어 전체 본문의 보존과 함께 구체적으로 구현된 여호와 계시의 정확성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 12:31 참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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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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