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탄(聖誕)의 바른 의미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15,18/강조는 필자에 의함)
12월 25일 성탄절은 구약에 약속한 메시아가 육의 몸으로 이 땅에 구속주로 오신 것을 기념하고 찬양하는 날이다. 하지만 그날은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주후 350년 당시 교권의 중심인 로마 가톨릭의 주교였던 율리오 1세가 임의로 지정한 것이 전통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로마 제국에서 12월 25일은 그리스도를 오직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 신앙과는 정반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우상숭배일이다. 이날을 그리스도 탄신일로 정하자 우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경악할 정도였다. 로마 태양신을 숭배하는 축제일로 온갖 잡신에 대한 제사와 난잡한 축제가 일어났던 날을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탄생일로 임의로 지정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탄절 12월 25일 지정은 역사적으로 대논란을 야기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의식하면서, 성경에 나타난 바른 의미의 성육신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성탄을 어떤 미신적 습관과 섞어 혼탁하게 하면 안 될 것이다. 날짜를 숭배한다든지 혹은 세속의 먹고 마시는 문화에 매몰당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한 이미지는 서구의 로마 가톨릭에서 시작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교리가 아직도 지배하고 있고 이것이 개혁교회에도 여전히 정화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로마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문화가 서구 기독교를 너무도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성탄과 관련해 두 가지만 구체적으로 짚어볼까 한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숭배와 예배의 대상으로 교리와 신학으로 만든 로마 가톨릭 문화에 은연중 젖어 들어 있는 부분이다. 아기 예수를 품은 마리아를 신격화하고 기도와 찬양을 돌리는 우상숭배가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마스’와 ‘아베 마리아(Ave Maria, 안녕하세요 마리아, 기쁘다 마리아)’라는 말을 의식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마스는 라틴어 ‘그리스도(Christus)’와 ‘미사(missa)’의 합성어다. 미사는 개혁교회의 예배와는 그 의미와 절차가 전혀 다르다. 이방종교의 제사의식과 개혁교회의 예배가 다르듯이 가톨릭의 미사와 개혁교회의 예배는 전혀 다르다. 성탄절 아침에 교회에 가는 것이나 가톨릭 성당에 가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면 이는 성탄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상당한 의미 차이가 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보다 ‘성탄(절)’이 더 낫다고 본다. 또 하나는 ‘아베 마리아(Ave Maria, 기쁘다 마리아여!)’에 담긴 문제다. 가톨릭에서 전통적으로 부르는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아베 마리아, 은총이 가득한 자여,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서 복되시며, 복되도다 네 태의 열매 예수시여. 거룩한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우리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아멘.’ 이 곡에는 마리아가 구원의 중보자로 나온다. 성탄 축하의 대상이 마리아로 되어 있다. 이는 육의 몸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존영(尊榮)을 훼손하는 것이며 마리아의 신격화 곧 우상숭배다. 아기 예수를 안은 자애롭게 보이는 어머니 마리아의 이미지 확대는 그리스도 성육신의 위대한 사건을 왜곡하는 폐습이므로 개혁교회는 경계해야 한다. ‘아베 마리아’ 호칭에는 마리아가 존경과 기도와 예배의 대상이라는 선언이 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의의 왕 평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신성을 아기 예수를 품은 마리아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것은 성탄 본질의 왜곡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용어와 아베 마리아 곡은 성탄에 즈음하여 꼭 경계해야 한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요한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성탄 사건이 인간의 모든 판단을 불허하고 세상의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건임을 기록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요한복음 1장 14절부터 18절 내용의 일부를 그대로 따라가 보면서 성육신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계시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이방종교처럼 특정한 날과 인간을 숭배하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경계하고 또한 세속의 타락한 연말연시 쾌락 문화에 매장당하지 않도록 하자. 창세전 태초의 영원한 말씀(로고스)이신 그리스도는 육신을 취하셨다.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었다’는 말보다 그리스도의 주권적 신적 사역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취하셨다’는 동사가 더 적합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보다 6개월 앞서 그야말로 ‘잉태된’ 인간인 세례 요한은 육의 몸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뛰놀았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본성을 강조해서 이 사건을 좀 더 선명하게 한다면 ‘이 땅에 성육신하신 만왕의 왕 그리스도께서 잉태케 한 세례요한에게 기쁨을 알려주시고 뛰놀게 하셨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이 땅에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한 이 성탄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적으로 은혜이며 절대 진리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너무도 거룩한 사건이다. 그래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자신이 먼저 잉태했지만 ‘자신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신다’고 알려준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영존하는 그리스도가 육의 몸을 취하신 사건은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이며, 모든 피조물 만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계 4:8)로 유일하게 찬양받으실 그리스도가 만주의 주로 오신 대우주적 사건이다. 이것이 성탄의 본질이며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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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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