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의 절대권위와 성경 본문 순서(I)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성경권위는 기록된 본문 그대로 가감(加減) 없이 유지해야 한다는 엄격한 내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 앞서 인용한 성경 본문은 성경 완결 부분에 위치한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은 단지 요한계시록에 국한하지 않고 창세기부터 시작한 모든 성경 기록을 포함한다고 본다. 성경 모든 기록의 원저자는 성령 하나님이므로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 모든 문자 기록은 그 순서의 중요성도 매우 중요하다. 수천 가지 이상의 사건 기록을 담고 있는 성경 내용에서 그 순서는 단순한 인과 관계 이상의 단단한 논증 구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야만 그 자체 진리가 될 수 있다. 태초의 천지 창조 다음에 왜 땅의 상태가 이어지고 다음에 빛의 존재가 나와야 하는가? 에덴동산 창설 다음에 왜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사건이 나와야 하는가? 노아 홍수 사건(창세기 6장 이후)은 왜 아담의 족보(창세기 5장) 기록 다음에 따라와야 하는가? 이러한 방식의 질문은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수천 가지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구약 성경 마지막 말라기 4장 6절은 왜 그런 기록으로 끝나며 이어 신약 성경 처음은 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내용으로 시작해야만 하는가? 관련되지만 질문의 방식을 바꾸어 본다면, 성경의 수많은 기록들의 순서를 임의로 바꿔도 되는가? 어느 정도는 바꿔도 되는가? 마태복음이 반드시 요한복음 앞에 있어야만 하는가? 반대로 요한복음이 복음서 중 제일 먼저 나올 수는 없는가? 고린도전후서가 로마서보다 앞서면 안 되는가? 요한1·2·3 다음에 왜 유다서가 오고 그다음에 요한계시록이 나오는가? 하나님의 말씀 절대진리 성경의 권위는 사건 기록의 순서를 포함한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성경 기록 내용을 함부로 그 순서를 바꿀 수 없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경고한 기록한 말씀 외에 더하거나 제거하려는 자에게 임하는 심판이 무서운 것처럼, 기록한 말씀의 순서를 바꾸는 것 또한 동일한 심판에 처한다고 본다. 가령 어떤 부분을 제거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논리적 연결에 당장 큰 문제가 생긴다. 어떤 내용을 함부로 첨가하거나 제거하는 문서 위조가 성경 원저자의 의도를 훼손하듯이, 기록한 내용의 순서를 가볍게 여기고 임의로 순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태도 또한 문서 위조만큼 심판받아 마땅하다. 기록 내용의 이동은 단지 앞과 뒤를 바꾸는 순서 배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배치를 하느냐에 따라 논증의 구조가 달라지고 진리 확증 여부를 판가름하는 문제가 된다. 이렇게 성경 기록의 배치 문제는 성경 권위 확증과 직접 관련된 사안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명하기 위해 먼저 성경 순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관련 분야를 소개하고 나아가 개혁파 교회가 현재 따르고 있는 성경 순서의 확정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이어서 탐구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순서가 성경권위에 어떻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성경의 순서를 다루는 분야는 ‘정경학(Canonics)’과 ‘성서비평학(Biblical Criticism)’이다. 이 분야에서는 주로 성경이 형성 배열되는 과정을 (인간 중심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정경학’이란 말 자체가 성경이 신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정경(canon)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한다는 뜻이다. 통상 66권으로 현재 그 순서대로 하나의 구조적 통일성을 이루어 온 역사적 과정을 살핀다. 성경의 구성과 배열, 정경 선별 기준 등을 다룬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경 포함과 제외의 기준 확정과 관련된다. 우리는 이러한 정경학을 대할 때 성경의 원저자가 오직 성령 하나님 한 분이심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의 유일한 원저자임을 증명하는 것이 단지 구호 제창을 반복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필자는 성경 본문 배열과 순서가 성경의 신적 권위 확정을 뒷받침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자칫하면 정경학의 주체가 인간이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 기록을 통해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기록하여 절대진리 차원으로 질적 상승을 주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성경 권위에 대한 확고한 전제를 바탕으로 정경학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문서비평(Documentary Criticism)에서는 성경의 다양한 출처를 분석하면서 각각의 문서가 어떤 조합으로 현재 형태가 되었는지 연구한다. 형식비평(Form Criticism)에서는 성경의 문학 장르별 형태와 구조를 분석하면서 텍스트 전승과 그 배열 과정을 탐구한다. 그리고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은 성경 본문 배열이 변경되는 과정과 의도를 연구한다. 문서비평에서 특히 문학비평(Literary Criticism) 분야는 성경 본문 배열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먼저 성경 텍스트의 문학적 특징과 구성, 스타일과 구조 등을 분석한다. 가령 성경 기록에 사용된 다양한 문학적 장르를 알아보고 왜 그러한 스타일을 사용했는지 탐구한다. 서사(narrative) 스타일인 창세기와 사무엘서, 시가(poetry)인 시편과 잠언, 예언(prophecy)인 이사야와 에스겔, 서신(epistle)인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 등, 묵시(apocalyptic)인 요한계시록과 다니엘 등 각각의 문학적 스타일이 특별계시 기록에 어떻게 도구적으로 활용되었는지 살핀다.
문학비평은 특히 다음과 같은 연구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성경 본문 텍스트의 구조적 배열이 왜 지금 방식으로 확정되어야만 하는지 정경(正經) 순서에 관심을 집중한다. 가령 창세기 1장의 주어는 ‘하나님’으로 시작하는데, 창세기 2장 4절부터는 왜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는지를 해명하고자 한다. 또한 구약 마지막 기록인 말라기와 신약 첫 기록인 마태복음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나아가 성경 배열이 어떠한 신학적 의미를 반영하는지 연구한다. 또한 계시 기록에 사용된 수사학적 기법에도 관심을 모은다. 반복(repetition)과 대구(parallelism), 은유(metaphor)와 상징(symbolism) 그리고 비유(parable) 등이 어떻게 특별계시 기록에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살필 수 있다. 정경학은 주로 성경 기록들의 선택과 배열 과정에 드러나는 역사적이며 신학적 동기에 집중한다면, 성서비평학은 텍스트 형성의 세세한 과정을 분석하고 편집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역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러한 정경학과 문서비평학을 활용할수록 모든 성경의 원저자는 오직 성령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증해 가야 한다. 그리고 성경권위 확증은 원저자의 주권과 은혜에 속한다. 필자는 이어지는 논의에서 정경학과 문서비평학에서 제기하는 성경권위와 관련된 많은 물음들에 대해 성경 자체의 논리에 의존해 해명을 시도하고자 한다. ‘여호와의 존재와 속성 계시 중심의 관점(여호와 계시 관점)’에서 성경권위를 입증해 가고자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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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
창세기 36장·37장·38장 사건의 논리적 일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