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경의 절대 권위와 성경 본문의 편집(Ⅳ)
<지난 호에 이어서>
2. 구약성경 구조의 변혁, 70인역(Septuagint, LXX)의 등장
본래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배열은 현재 한글번역 순서와 달랐다. 히브리어 성경은 타나크(Tanakh)라고 불리며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구성된다. 율법서 토라(Torah)와 예언서 네비임(Nevi’im) 그리고 성문서(聖文書) 케투빔(Ketuvim)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왜 이러한 방식으로 배열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토라(율법서)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속하며, 네비임(예언서)은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이며 후기 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선지서(호세아~말라기)다. 케투빔(성문서)에는 시편, 잠언, 욥기, 다섯 두루마리(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상·하)가 있다. 한글개역성경과 눈에 띄는 차이점은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에스라·느헤미야는 각각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니엘은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Ketuvim)에 포함된다. 이러한 본문 배열은 역사적 순서보다 문학적 양식과 신학적 의미 구조에 따라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성경의 구조는 주전 3-2세기경 구약의 헬라어 최초 번역인 70인역(Septuagint, LXX)에 오면 변화가 일어난다. 주전 3세기 말 헬라제국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가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Ptolemy II Philadelphus, 주전 283-246년)는 당시 최대 규모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유대인들의 경전도 소장하고자 유대인 학자들을 초청해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지원했다. 2세기경 유대 문헌 『아리스테아스의 편지(Letter of Aristeas)』 기록에 의하면,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유대인 학자 72명을 초청하여 72일 만에 모세오경을 번역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오경 번역에 참가한 72명을 ‘70’ 숫자로 간소화하고 상징화하여 ‘70인역’으로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70인역은 주전 285년에 시작해 주전 100년경까지 200여 년 동안 긴 시간의 번역 과정을 거친다. 모세오경은 주전 285-250년경, 예언서는 주전 200-150년경, 성문서는 주전 150-100년경에 번역된다. 기원전 130-100년경은 구약성경 헬라어 번역 완성기였다.
특별계시 기록의 역사와 관련해 말라기 이후 그리스도 탄생까지 우리는 특별계시 기록이 없는 시대로 알고 있다.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계시 기록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전 5세기 중엽 특별계시를 받았던 말라기 이후 하나님의 말씀 신약성경은 주후 1세기 중반부터 말엽까지(50년경부터 100년경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 다시 기록되면서 특별계시 성경은 완성된다. 알다시피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앞의 연대기를 통해 생각해 볼 때 구약성경 헬라어 번역이 285년경부터 100년경까지 완성되는 동안은 헬라어로 신약성경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새겨볼 수 있다. 성경의 원저자는 오직 한 분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원저자일 뿐 아니라 진리 전파와 수호의 주관자이시다. 기록한 말씀을 생명으로 받을 자들에게는 긍휼과 은총과 사랑의 능력이 되지만, 진노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자들에게는 말씀은 심판의 권능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구약성경의 70인역 헬라어 번역 과정은 살았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히 4;12)이 장차 헬라어로 기록될 신약성경 시대를 준비하게 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헬레니즘의 지적 문화를 주관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70인역 번역 과정을 통해 장차 영존(永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통치와 나아가 천국의 헌법인 신약성경 기록 완성과 동시에 특별계시 기록 완성을 위한 준비를 치밀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다. 성경계시 자체의 기록뿐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기 위한 모든 준비 곧 언어 선별, 당대 정치와 역사적 상황, 사상과 이념, 기자의 선별, 문예 양식, 지적 수준 등 일체를 총괄하시면서 특별계시 완성의 준비를 섭리하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70인역이 완성되는 역사적 상황을 더 살펴보도록 하자. 주전 3세기 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자료 수집 규모는 당대 최고였다.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40만~70만 권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제국의 도서관이었다.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바빌론, 유대 등 다양한 지역의 문헌을 확보하였으며 그 문헌을 모두 헬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문헌은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략 7백여 년 동안 그 자료들이 거듭해서 소실 당했기 때문이다. 먼저 주전 48년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로마 제정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기원전 100년경-기원전 44년)가 알렉산드리아를 침공하면서 도서관 자료 일부를 소실시킨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와 그의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 간의 권력 다툼에 개입한다. 클레오파트라 편을 들었던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정박해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함대를 불태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화공술(火攻術)에서 불길이 항구 근처 창고와 일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까지 번졌다. 도서관 소장본 소실 규모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문서 몇만 권에서 최대 몇십만 권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주후 391년 기독교를 국교화하는 과정에서 세라피움(Serapeum) 신전 파괴 당시 신전의 한 부분이었던 도서관의 상당한 자료들이 파기된다. 세라피움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집트-그리스 합성 신 세라피스(Serapis)를 모시는 신전이었으므로 세라피움 파괴는 기독교 외의 이교 문화와 고대 문명의 공식적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 후 도서관은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주후 642년 이슬람 칼리프 우마르(Umar ibn al-Khattab, 584년경-644)가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면서 도서관의 남은 자료를 모두 폐기한다. 명확한 근거는 없지만 자료의 최후 소실과 관련해 전해지는 얘기가 있다. 칼리프 우마르는 ‘도서관의 책들이 쿠란과 일치하면 필요 없고, 다르면 해로운 것이니 불태우라’는 명령을 했다고 전한다.
다시 돌아와 70인역에 나타난 구약의 구조 변화를 좀 더 살피도록 하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나크의 세 부분 즉 율법서-예언서-성문서 구조를 해체하고, ‘주제별’로 재배열했다는 사실이다. 그 순서는 현재 한글번역 구약성경 배열과 일치한다. 모세오경(율법서)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인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시가서인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욥기, 예언서인: 이사야, 예레미야(애가 포함), 에스겔, 다니엘, 12소선지 예언서이다. 이러한 구조의 특징을 보면, 타나크의 ‘성문서(Ketuvim)’ 부분이 사라지면서 역사서·시가서·예언서로 재편했다는 점이다. 좀 더 살피면 다니엘을 예언서로 분류했으며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분리했다. 룻기가 사사기 뒤로 이동하고 애가는 예레미야서에 포함된다.
<다음 호에 계속>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