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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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7 21: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쇼 같은’ 기념행사들


지난 10월 29일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이었다. 이 날은 물론 그때를 즈음하여 2007년부터 종교개혁 기념행사를 준비한 독일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개신교 교회들과 신학회에서도 기념행사를 가졌다. 한국 개신교도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기념회와 포럼을 주관하는가 하면 학회 신학교 교수들도 선언서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웃 일본 개신교에서도 루터학회를 중심으로 기념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내 기독교 방송사들은 앞다투며 종교개혁 특집 시리즈를 방영했다. 결론은 모두 하나였다. ‘종교개혁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런데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더 부패한 한국 교회가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더 많은 종교개혁 기념행사를 했다는 점이 참으로 당연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쇼 같은 행사를 했다’는 느낌이다. 가장 부패했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교회보다 종교개혁 정신을 되살려 부패한 한국 교회를 개혁해야하는 일을 단행하고자 결집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쇼와 같은 행사가 된 이유는 이러한 행사를 진행하는 기독교인과 행사에 참여한 교인들 그리고 그 행사를 지켜보는 한국 교회 교인들은 교회개혁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동시에 한국 교계와 한국 신학계가 정말로 지도자부터 앞장서서 각종 교회의 폐습을 척결하고 성경진리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기대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는 교회별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교황청’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렇지 못한 자는 그렇게 하려고 기회를 보며 술수를 쓰고 있다. 이러한 남부럽지 않은 종교권력을 또한 재물이 단단하게 그 뒷받침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개혁 기념행사가 아무리 큰 목소리로 개혁을 외쳤다 해도 그 순간을 지나면 그들도 종교권력의 혜택을 나누어갖는 처지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종교개혁 구호의 외침은 이내 공허한 메아리로 울리며 사라질 뿐이다. 한국 교회 교인이라면 한국 교회에 대해 누구라도 몇 가지씩 결코 청산하기 어려운 적폐들을 쉽게 나열할 수 있다. 성경교육과 교회학교의 무시, 물질주의, 교권주의, 분파주의, 성공과 번영 중심주의, 이기적이며 비열한 개교회주의, 매관매직, 온갖 추문들 등.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와 같은 부정부패가 한국 교회를 지배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교회에서는 반드시 개혁하고 척결해야 할 불법이요 범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것은 ‘성경권위’와 관련된 문제다. 즉 성경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아니 성경지식에 대해 지도자들은 노골적으로 성도들을 무지몽매하도록 몰아간다. 그러면서 인위적인 헌법이나 정관을 만들어 놓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단죄하고 추방해 버린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들은 점점 제도와 규율로 관리하면서 종교적 허례허식으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신앙의 바탕인 영혼을 회복불능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정말로 바울 사도의 말대로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딤후 3:13)’는 참담한 상황이다. 한국 교회의 부패한 종교 권력을 법과 제도마저 보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경권위’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과 엄하신 심판의 대격변이 아니고서는 결코 회복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개탄스러운 심경으로 바라볼 때 500주년 종교개혁 기념행사는 미미하게라도 일고 있는 개혁의 물보라만도 못한 아쉬움이 더 큰 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절대권위’라는 종교개혁 정신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한국 교회 부패의 한가운데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패의 본질은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데 왜? 왜? 교회에서 세상보다 못한 저질스런 짓들이 횡행하는가? 교회부패는 교회의 절대표지인 성경진리에 대한 부재(不在)의 필연적 귀결이다. 중세 로마 가톨릭의 교황권위 1000년의 역사가 바로 이것을 대변하고 있다. 교회에서 드러난 추악한 불법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높이셔서 바로 이 상황에서도 분명 정확하게 통치하고 계시는가가 고민의 핵심이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여기에 답할 수 있는 대안은 ‘오직 성경밖에’ 없다. 성경권위를 하나님 말씀으로 확증하여 개혁자들의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는 길밖에 없다. 미완의 과제는 현상적인 불법의 처단 이전에 가장 먼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하는 일이다.

사실 개혁파 교회의 절대 표지인 성경은 16세기 종교개혁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경의  권위는 빠르게 매장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권위는 인문주의와 근세철학,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 비평학에 의해 발가벗겨진 채 수치를 당했다. 난도질당한 성경의 문서들은 곧 버려질 허섭스레기가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많은 비용으로 뜻 깊은(?) 종교개혁 기념행사를 해 보았자 종교개혁 정신의 본질인 성경권위 회복에는 별무소용일 뿐이다. 서구 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을 기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직도’ 성경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확정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식하는 데 있다. 향후 종교개혁 정신은 난도질당한 성경권위를 절대진리로 확증한 역사를 경험하는 일과 이를 확산시키는 일과 함께 계승될 것이다. 아니 그 정신으로만 계승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교회 세습을 넘어 성경권위 ‘세습’으로
표절 설교, 한국교회 몰락의 징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