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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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8-22 10:0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장통합 108회 총회,다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낼 것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측/이하 예장통합) 108회 총회 소집 날짜와 장소가 공지(公知)되었다. 그런데 장소가 문제가 되면서 예장통합 내부의 비판은 물론이고 4년 전 불법 세습의 추잡한 면모가 떠오르며 사회적 물의까지 빚고 있다. 그 문제의 장소는 명성교회다. 예장통합 내에서도 다른 교회로 총회 장소를 변경해야 한다는 목회자들의 서명 운동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4일 장소 변경을 요청하는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이의 제기가 나온다. “일방적으로 총회를 추진하는 처사를 방관할 수 없다. 명성교회에서 굳이 총회를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임원회는 왜 이를 강행하려는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틀 만에 목회자 1,046명이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난 4년 전 2019년 104회 예장통합 총회는 명성교회 부자(父子) 세습을 허용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총회 결정에 통합 측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성도들도 매우 큰 실망과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잠시 명성교회 부자세습을 허락한 예장통합 104회 총회 결정에 대한 당시 평가들을 떠올려 보자. 2013년 예장통합 98회 총회 장소가 명성교회였으며 그 총회에서 교회 세습금지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6년 후 2019년 104회 총회에서 다른 곳이 아닌 그 명성교회의 부자세습을 허용함으로써 총회와 명성교회는 함께 한국 교회사에서 거두어들일 수 없는 오명을 썼다. 예장통합 104회 총회는 당시 대형교회인 명성교회를 불법세습의 수렁에서 구제하려다 많은 성도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재물과 욕망이 얽히고설키면서 총대의 눈을 멀게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104회 교단 총회는 자신들이 만든 법을 특정인과 특정교회를 위해 포기함으로써 교회법의 신뢰성을 추락시켰다. 개신교 장자(長子) 교단이라고 자청하던 예장통합 교단이 등록 교인 10만 명의 대형교회에 굴복했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사회적 공익을 추구해야 할 교회가 사이비 이단 종파처럼 특정 가족을 위한 사익 단체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도 빗발쳤다. 당시 기독교 법조인 약 500명으로 구성된 기독법률가회(CLF)는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나 [104회] 예장통합 총회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으며 “한국교회가 짠맛을 잃어서 쓸 데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을 썩게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라고 물었다.

이러한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많은 교회개혁 단체 중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는 이번 “명성교회에서의 총회 개최는 김하나 목사의 입지를 다지려는 김삼환 목사의 노욕”이라고 비판했다. 교회개혁평신도행동연대 정태윤 집사는 “불법 세습으로 교회를 사유화해 세상에서도 조롱당하는 명성교회가 ‘치유와 화해 및 교회 성장 운동의 시작’을 가장 의미 있게 드러낼 장소라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라고 분노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김정태 목사는 현재 예장통합 총회 임원회를 향해 “소위 저잣거리 깡패 집단보다 훨씬 못한 정치를 하고 있다. 깡패들도 계파별로 안배하고 서로 조심하고 상대 입장을 헤아리는데, 총회 임원회는 명성교회를 등에 업고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며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명성교회 세습을 줄곧 비판해 온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는 명성교회 총회 장소 철회를 촉구하는 글에서 현재 예장통합 임원회의 결정은 신사참배보다 더 굴욕적이라고까지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 목사의 지적이다. “1938년 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가 장로교회의 큰 오점으로 남았던 것처럼, 명성교회 수습안 결의도 두고두고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며 “신사참배 결의는 일제 강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104회 총회 수습안 결의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맘몬에게 굴복하기로 결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더 큰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치유와 화해의 소명을 갖고 총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명성교회를 총회 장소로 고집하는 예장통합 김의식 부총회장에게 “치유를 가해자 교회에 가서 한다니 이것은 (치유가 아니라) 요즘 말로 2차 가해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정하는 과정에서도 명성교회와 예장통합 총회 임원회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비난 대상이 되고 있다. 예장통합 총회 임원회가 처음에 명성교회에 총회 장소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명성교회는 교회 사정상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임원회가 재차 부탁하자 허락하는 모양새로 보이면서 결국 총회가 명성교회에 무릎을 꿇는 형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장통합의 다른 대형교회들 곧 새문안교회, 소망교회, 영락교회, 주안장로교회,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 등 여러 교회에서 총회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총회는 명성교회를 총회 장소로 정했다. 그리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총회이지만 만약 명성교회에서 총회가 개최된다면, 지금 우려와 비난으로 볼 때, 명성교회는 다시 한번 명성이 추락하는 결과를 자초할 수도 있다. 지난 4년 전 명성교회의 초법적 사태로 인한 실망과 분노의 상처는 104회 총회와 명성교회의 진정한 반성과 세습 철회가 선행하지 않는 한 화해와 치유와 용서라는 구호는 공허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성경적 총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그 모범적 사례를 우리는 사도행전 15장에서 선명하게 너무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비상설 기구로서 총회는 무엇보다 진리 문제로 모이는 곳이어야 한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 사이에 발생한 갈등으로 예루살렘 총회를 개최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법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바울과 바나바는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논쟁이 시작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을 만나러 간다.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소속 기독교인들이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예루살렘 총회에서는 이 문제에 관련된 진리 토론이 벌어진다.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가르침인지,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받지 않아도 되는지 그야말로 사도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많은 시간의 변론이 있은 후에(15:7 참조) 사도 베드로가 발언 기회를 얻어 이방인에게 임한 성령과 믿음의 우월성을 증명한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로써 제시한다. 그리고 야고보 사도가 구약을 근거로 이방인도 어떤 조건 없이 하나님 백성임을 확인한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이방 성도들이 멀리할 것을 권고 편지로 기록하여 보내면서 진리 토의로서 총회가 마무리된다. 한국 개신교 총회가 이렇게 건전하고 수준 높은 총회, 성경 진리에 귀 기울이는 총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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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다면,그 정의는 올바르지 않은가
자결하고 폭행당한 선생님들, 우리의 소중한 피붙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