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6-09-25 11:2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교개혁 500주년, 교회개혁의 성경적 대안을 주소서!


내년 2017년은 종교개혁(1517년) 5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개신교는 분주하게 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수였던 루터의 의욕으로만 시작했다는 것은 피상적 이해다. 중세 천 년 동안 교황권위로 온갖 진리 왜곡과 교회 부패를 자행했던 시간을 ‘성경권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쳤던 본래의 진리로 돌려놓으신 성령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역사적 사건이었다. 무지몽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리를 일깨워 주신 교회 역사에서 무한한 은총의 사건이었다.

2000여 년 전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 지역의 불쌍한 영혼들에 대해 눈물짓던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었다. 그 사랑을 지금부터 500여 년 전 성령 하나님께서는 야벳 족속의 후예들인 유럽에서 다시 한 번 한없는 은총으로 베풀어주셨다.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 진리를 왜곡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온갖 거짓과 술수로 능욕하던 가톨릭교회에 대한 심판을 단행한 성령의 역사였다. 영혼을 살려주기 위해 중세 천 년 동안 믿음의 선진들이 갈구했던 피눈물을 닦아준 사건이었다.

정확히 150년 전, 1866년 26세의 영국 웨일즈 출신 선교사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는 불타는 ‘제너럴셔먼호’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대동강 쑥섬에 전해주고 순교했다. 그 이후 우리는 정말로 기독교 역사에서 유례없는 복음전파의 확산과 함께 신학의 성숙과 교회의 물질적 축복(?) 속에 온갖 부귀와 영화와 안락을 온몸에 누리고 있다. 이제는 불어난 재산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하는, 마치 곳간의 쌀더미에 갇힌 배부르고 비대한 쥐새끼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교회 내 분쟁과 당파, 술수와 모략의 배후에는 대부분 일만 악의 뿌리인 맘몬(Mammon)을 숭배하는 본색이 숨겨져 있다. ‘중세교회보다 더 부패했다’는 원로 기독교인의 일침이 더욱더 현실화하고 있다. 축복이 아닌 저주 위에 심판이 쌓이고 있다.

얼마 전 루터대학교 이말테 교수는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드리는 한 독일 선교사의 글’을 게재한 바 있다. 현재 한국 교회에는 기독교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것으로 요약해 봐도 좋다. 종교개혁의 발원지인 독일 곳곳에 이제는 여행객들의 볼거리가 되어버린 고딕 양식의 건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모든 도시는 거대한 교회 건물들이 당회장 이름으로 진열되어있다.  과거 동네 어귀에 길흉화복을 비는 신당(神堂)처럼 이제는 도시 한가운데서 고가(高價)의 부동산으로 자리 잡고 온갖 치장을 하여 복을 빌고 교권주의자들이 허세를 부리는 작은 교황청으로 둔갑해 있다. 이말테 교수는 기고문에서 열 가지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공감하는 바를 적었다. 그의 말인즉, 고가의 화려한 교회 건물에서 그 건물을 자신의 건물로 착각하는 목사들이 낮은 신학적 수준으로 우매한 성도들을 거창한 예배 의식으로 옭아매어 천국과 지옥 상품으로 협박과 술수로 재물을 모으고 그 직위를 매관매직하는 현장이 되어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심각한 사태라는 말이다.

성도들을 지배하는 유교문화의 악습이 유전자처럼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 직분의 위계의식은 목사를 성직자로 만들고 성도와는 구별되는 하나님께 더 가까운 자로 착각하게 한다. 말도 되지 않는 공허한 속임수들은 정말이지 통탄할 지경이다. 오히려 더 사악한 교권주의자들은 성도들을 자기의 종으로 속여서 이용한다. 성경 교육과 올바른 신학 교육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고자 열의가 있는 자를 색안경을 끼고 보며 목회의 첫 번째 경계 대상으로 삼는다. 성경을 더 잘 강의하라고 하면서 지식주의자로 매도하고 이단에 빠진 게 아니냐는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는다.

중세 로마가톨릭 사제들의 부패가 심각하게 반복된다. 사리사욕의 본색을 숨기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를 사리사욕의 도구로 이용한다. 교회 선후배 동역자를 이해관계에 맞지 않을 때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하는 장애물로 본다. 그리고 자기편으로 만들 성도를 하나씩 골라내어  신방(訊訪)이라는 미명으로 만나 성도들의 편을 가르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다. 안부를 묻는 전화이지만 목사의 전화 한 통화는 성도들이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역이용하여 무지몽매한 성도를 매수한다. 성경을 정확하게 빠른 시간에 가르쳐 성도들의 양육과 성장에 몰두하기보다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다. 성도들의 지치고 바쁜 일상을 역이용하여 달콤하게 위로해주며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생존을 위한 인맥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성도마다 떠보기가 일쑤다. 써먹기에 편한 사람인지 한번 떠보고 그렇다 싶으면 호의를 베풀고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미래의 감투까지 보장해 주는듯한 말로 현혹한다. 로마제국을 사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지키게 하셨던 하나님, 하나님의 엄한 심판과 아울러 은총을 갈구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성경권위’를 모르면 강단을 떠나게 하소서
‘홀로코스트’의 진원지에서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