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성폭행 피해자의 눈물을 닦을까
서지현 검사의 또 다른 검사에 의한 성추행 사건 폭로 이후 ‘미투 운동(#MeToo, 나도 겪었다)’이 평창 동계올림픽만큼 국민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사법기관, 문화예술계 전반, 문단(文壇), 대학가, 선수촌, 종교계 등 모든 분야에서 피해자들의 고발과 고백이 미투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성폭행과 성추행이 나라 곳곳에 깊이 뿌리박힌 몹쓸 악성종양처럼 만연해 있다는 말이다. 정말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관행’이라고 하는데 짐승짓에도 미치는 못하는 이런 야만적 관행이 있는지!!) 마치 횟가루 뿌려진 썩은 시체처럼 병든 우리 사회는 곪고 썩고 터지고 있었다. 한때 노벨상 후보까지 갔던 문학계 원로는 격에 맞는 정중한 사과 한마디 없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염치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상식으로 보면 국민 목소리의 절반이 여성의 소리이고, 사회 곳곳에는 탁월한 능력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성 지도자들이 많은데 왜 이리 조용했어야 하는지 의아해지기도 한다. (비록 실패작으로 돌아갔지만)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 대통령까지 배출된 나라인데, 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당하고만 있었는지 오히려 답답함이 짓누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수십만 아니 수백만 건 이상으로 가장 많이 가장 먼저 올라가야 하는 사항이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이 받는 차별 조항의 철폐나 여성 보호의 상세한 조항이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기독교 여성관의 관점에서 보면 성도로서 여성의 권리는 더욱 엄격하고 귀중하다. 바울 사도는 창세전에 이미 예정된 교회의 신령함을 말하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교회를 설명한다. 아내 즉 여성에 대한 이해를 배제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여성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징표’(엡 5:25)이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엡 5:27~28)의 확증적 증거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 사도를 통해 성도로서 여성에 대해 이렇게 엄격하고 귀중한 규정을 내린다.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 3:7)”
만약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하는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가 창세전 성도로서 여성을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유산을 물려받는 성도로서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이는 아마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로서 여성에 대한 권리 침해는 바로 하나님의 성전 그리스도의 교회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