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한국교회 신뢰도 더 추락하는 성경 권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짐작하면 이해될 만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이 실망스러운 여론 결과를 내놓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전국 성인 1,000명에게 한국교회를 신뢰하느냐를 물었으며 그 결과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두 배나 높았다. ‘신뢰한다’는 31.8%, ‘신뢰하지 않는다’는 63.9%였다. 그리고 종교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곳은 어디냐는 질문에 가톨릭(30.0%), 불교(26.2%), 개신교(18.9%) 순으로 타 종교에 비해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할 때 응답자들은 이미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기독교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타 종교를 더 신뢰하는 국민들은 물론 개신교 내부에서도 개신교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말이 된다. 교인이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성도 즉 ‘가나안 성도’의 수가 적어도 4명 중 1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교회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짐작된다.
물론 기독교에 대한 국민 신뢰도 추락이 기독교 진리 자체에 대한 신뢰도 추락과 일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 중 둘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 교인의 한 사람으로 교회 존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신령한 교회가 세간의 평가에 따라 존립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하더라도 교회 존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정체성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안일하게 답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국민 과반수의 부정적 평가는 밖으로 드러나는 한국 교회의 부정과 불법, 일부 목회자들의 뻔뻔한 탈세와 반인륜적 범죄에 맞춰졌을 것이다. 고정된 수입으로 다달이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보기에 대형 교회가 쌓아놓은 수백억, 수천억, 수조 원의 재산은 분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거기에다 종교인 비과세라는 세금 특혜는 꼬박꼬박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며 살아가는 자영업자 국민들을 다시 한번 교회에 등을 돌리게 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더 큰 신뢰도의 추락은 바로 교회 내부에 있다. 한국 교회의 교파·교회·성도 사이에는 허물 수 없는 장벽인 대립과 반목, 시기와 질투가 지배한다. 교회 규모와 교인 수 증가가 교회 성장이요 교회 부흥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성공적 목회’라고 평가해준다. 수십 년 다녀도 성경 말씀 몇 구절 읽고 바른 하나님을 소개하지도 못하는 참담한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소속 교회 건물의 크기와 교인 수가 마치 신앙을 보증하는 상징처럼 여긴다. 참으로 통탄하다. 성경 진리를 튼실하게 연구하며 건전한 신앙을 지켜갈 차세대의 성장 곡선이 꺾인 지도 이미 오래다. 스스로 교회 미래를 생각해 보면 현재 사분오열하며 내부 붕괴를 가속화하는 내부 ‘신뢰(信賴)’의 추락 상황은 다가올 한국 교회 미래를 암울하게 그려줄 뿐이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그 처방전은 있는가? ‘신뢰’라는 말에서 시작해보자. 신뢰는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교회는 굳게 믿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떻게 믿는 것이 굳게 믿는 것인지 오리무중이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고 한국 교회사 150여 년의 역사를 지나는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교회는 교회의 절대 지표인 ‘성경권위’를 스스로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사 섭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엄격한 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 교회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멸망 직전 상황과 방불하다. 여호와의 성전이 온갖 이방 잡신들의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타락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만 선포되어야 할 진리의 전당인 교회 강단은 온갖 세속 철학과 이방 잡신론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잘 모르는 성도들은 이 말에도 ‘아멘’, 저 말에도 ‘아멘’이다. 예레미야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은 죽이려고 하고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짓 지도자들은 선호한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유일한 절대표지인 ‘성경말씀’을 더 이상 믿고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방증들이다. 이단들은 성경을 들이대며 너무도 성경적인 것처럼 접근해 이용하기 좋은 내용을 골라 우매한 성도들을 속이고 또 속이는데, 개혁파 정통 신학과 신앙을 고수한다는 자들은 너무도 성경에서 멀어진 세속적 설교에만 열을 올린다. 그 사이에서 성도들은 믿고 의지할 대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혼동만 거듭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만큼 더 딱하고 참혹한 일이 없을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같이 같은 말씀으로 신뢰하는 바가 동일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애끓는 소원일 뿐 사견(私見)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더 들어가 보면 진리에 대한 신뢰의 추락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정해진 하나님의 섭리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책망을 통해 무겁고도 엄격하게 읽을 수 있다. 고라신과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는 이미 멸망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보다 더 심하다고 하신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골목까지 간판이 붙어 있는 한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가 임한 저주의 갈릴리 삼각지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