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언론-사법’ 권력의 공생과 공멸의 갈림길에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있었던 일이다. 광주 MBC와 광주 KBS에 방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원인에 대해서는 신군부 측에서 보낸 ‘편의대’(便衣隊)의 공작이라는 주장이 심증(心證)을 충분히 얻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 아직은 확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광주의 MBC와 KBS가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게는 유리한, 시민에게는 불리한 편파 보도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뿐 아니라 국내 주요 일간지들도 편파 보도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외국 방송사와 언론들 일부가 자국 매체를 통해 광주 상황을 보도했다고 하지만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별 소용이 없었다.
한국 현대사를 결정짓는 정점의 역사 5·18광주민주화운동에는 방송과 언론의 책무(責務)가 무엇인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한편으로는 소수의 언론인이 신군부의 탄압을 견디며 사실을 보도하고자 애썼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신군부에 붙어 권력의 시녀 내지 나팔수가 되어 출세 가도를 달린 자들도 많다. 그 후 신군부의 시녀 내지 나팔수였던 방송과 언론은 신군부의 세력 약화와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새로운 권력기관으로서 힘을 결집한다. 이러한 사정은 방송과 언론보다 더 강력한 국가 권력 집단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 권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두 권력 집단들의 공생은 국민 여론을 사리사욕을 위한 희생제물로 만들어 갔던 면이 지난 수십 년간 부끄러운 과거의 흑역사였다.
검찰과 언론 그리고 방송이 함께 공모하여 하이에나가 표적을 정하듯 목표물을 정하고 덫과 같은 프레임을 짜면 어느 누구도 쉽게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덫을 풀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는 무덤까지 함께 가는 상흔으로 남는다. 수많은 대학생들과 정권에 저항하는 자들에게 덮어씌웠던 용공(容共) 프레임은 아직도 이어지는 저질스럽고 악랄한 프레임이다. 이러한 프레임 홍보를 담당하면서 자기 본분에서 벗어난 권력의 수족들이 일부 언론과 방송이었다. 거의 매일 나오는 일간지, 매일 정규 시간에 나오는 뉴스, 이제는 휴일도 없는 포털웹사이트에서는 아직도 ‘방송-언론-사법’의 공생 전략의 프레임은 계속되고 있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과 같은 목적으로 살아가는 검찰 중심의 사법 권력과 더불어 거대한 카르텔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걸리면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검찰총장도, 대법원장도, 대법관도, 판사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재벌도, 선후배 동료 검사 어느 누구도 결코 살아남기 힘들다. 살아남았더라도 거의 재기 불능 상태가 된다. 민초(民草) 한 명쯤 밟아 뭉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이에나에게 물려 죽어가는 처참한 먹잇감처럼 정치 검사들의 표적 수사망에 걸리면 당사자들은 혼자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조리 물어뜯는다. 영장 한 장으로 전화기를 압수하고 이메일을 열어보고 은행 계좌까지 그야말로 탈탈 털어버린다. 오늘까지 사실과 진실로 확정적이던 사건도 다음날이 되면 거짓이 되고, 그 반대로도 된다. 스스로 권력기관이라고 착각하는 언론과 방송, 스스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하는 정치 검사들 그리고 그러한 착각 속에 빠진 정치인들이 함께 프레임을 만들면 대한민국 전체는 잠시 그들 손아귀에서 혼돈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검찰이 쓰는 조서는 이미 정해진 프레임을 따르기 때문에 사실 증명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대로 사건의 진실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 근래 방송에서도 보도하는 바와 같이 조사받는 자가 말한 진술과 검사들이 작성하는 진술조서가 재판 과정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면 진술조서를 쓴 검사가 이미 정해진 프레임에 맞추어서 의도적 왜곡을 한 것이다. 다른 동료 검사의 진술도 왜곡한다고 한다. 얼마 전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검찰 조사 4번 경험, 조서 얼마나 왜곡되는지 확인”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부장검사는 그 과정에서 “조사자 의도 따라 왜곡되는 것 계속” 봤다고 한다. 그 부장검사의 말이다. “의도를 가진 조사자의 마음에 따라 조서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철제의자에 앉은 사람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위축되는지 그때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성폭행 위협 이후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하는 그 부장검사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검사들에게 “검찰은 이제 깨어나라!”라고 한다. 현재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일어나는 인권 상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물론 검사들 전체는 결코 아니다. 일부 정치권력에 눈먼 검사들의 잘못이다.
그런데 검사들에 의해 왜곡·조작된 내용은 같은 프레임의 덫을 만들었거나 그렇게 만들기 원하는 기레기들에게 던져지고 곧이어 왜곡되고 부풀려져 국민 여론으로 확대·재생산된다. 이를 바탕으로 여론 충돌이 일어난다. 기레기들이 흘린 정보를 진실로 알고 있는 시민들과 혹은 기레기들과 같은 이해관계에 얽힌 행동대들은 피켓을 들고 광화문으로 청와대 앞으로 검찰청 앞으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간다. 그와 동시에 그것이 허위로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같은 장소로 모인다. 시민들의 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긴 자들은 빌딩 꼭대기에서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는 민심을 보면서 팔짱 끼고 웃고 있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8월부터 시행된다는 ‘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은 단지 검사들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함부로 사실을 조작하는 방송과 언론도 엄단하는 제도를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진실 보도라는 기자의 기본 양심마저 저버린 이른바 기레기들의 농간이 세계인들의 별로 떠오르는 한국인들의 영혼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취재는 하지 않고 타인을 죽일 요량으로 프레임만 짜는 저질적이고 악질적 행태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검사? 앞의 부장검사는 이렇게 정의했다. 검사란 “공익의 대변자이자 인권 옹호기관으로서의 객관의무”를 지닌 자라고. 검찰조직이라는 사익을 버리고 국민의 멋진 인권옹호의 적임자로 돌아와 세계인들이 우리를 우러러보듯 대한민국 국민도 그대들을 우러러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언론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망나니 같은 방종처럼 타락하게 만들어버린 자들이 바로 근래의 언론 자신이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바로 서면 언론도 바로 서고 나아가 한국 현대사도 바로 설 것이라는 부장검사의 충고를 다시 새겨보자. “수뇌부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따라 상명하복으로 일체화된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중무장한 범죄단체로 변질되는 걸 불행한 한국 현대사에서 우리는 자주 봤다.”
세상 권력이 붕괴하는 것, 수립되는 것, 재건되는 것, 모두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한국 기독교 초기에 일어난 이씨조선의 폐망,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아픔, 북한이 도발한 6·25전쟁의 처참함, 부정부패 정권의 몰락, 연이은 쿠데타 정권, 문민정부 수립, 대통령 탄핵, 촛불혁명의 놀라움, 코로나19 극복의 모델 국가 등등 국가 존립의 모든 양상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역사섭리하에 있다. 어느 정권에 마음을 둔다는 것은 역사의 주권자를 망각한 처사가 된다. 아무리 나에게 맞지 않고 아무리 개탄스럽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선을 넘어선 안 될 것이다. 오직 그 시대에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도대체 무엇인지 괴로움과 답답함이 가중되는 만큼 더욱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