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만도 못한 가정파괴범들 : ‘여의도’의 아귀들!
성경진리를 사모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과 은혜임을 미리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며 가정파괴범의 행태를 보이는 세금 도둑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를 잠시 고민한다. 전직 법무부 장관, 현직 법무부 장관의 일로 일 년 이상 나라가 시끄럽다. 코로나19 대유행병 이전 작년 이맘때쯤 광화문과 서초구 일대는 거의 매일 관련 집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수만 명의 인원이 모여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쏟아지는 온갖 소문에 대해 국민들이 진위 논쟁을 벌이는 일이 늘 톱뉴스였다. 그리고 거의 유사한 일이 지금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두 장관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의 일부 부패한 검찰권력에 대한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한 가지의 공통점은 두 장관의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직 장관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장관집에서 밥까지 주문해서 먹고 장관집, 부인의 연구실, 딸과 아들의 학교 정보 등 그야말로 탈탈 털어갔다. 그러면서 뭔가 경천동지할 엄청난 비리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언론과 방송은 연일 그 보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경천동지는 고사하고 내용 없는 공허한 야단법석으로 끝날 지경이다. 단, 남은 것은 분명하다. 장관 이전에 갈기갈기 찢긴 그와 그 가족의 상처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검찰과 언론 그리고 여의도 아귀들이 함께 찢어놓은 그 가족 유린은 이미 회복할 수조차 없을 지경으로 보인다. 작년 이맘때 세상 몹쓸 인간 취급하며 가족 전체를 마치 사기범처럼 매도하여 매장하면서 시작했던 재판은 어떤가? 무슨 간첩단 사건이나 국가전복 혐의도 아닌데 장관과 부인은 수십 차례 법정을 오가고 있다. 정말로 인간의 상식선에서 볼 때 궁금하다. 도대체 가족 유린과 가정 파괴를 서슴지 않는 이 나라 일부의 검찰이란 작자들의 하는 일이 뭔지. 항상 시험에서 일등하고 일류 대학을 나오고 재학시절에 이미 사법고시에 합격한 일부 판사라는 작자들은 무엇을 하는 자들인지 너무 궁금하다. 한글 사전의 뜻을 다시 정의해야 할 판이다. 거기에 기레기인지 기더기인지 하는 일부 언론과 방송의 악의적 편집과 선택적 보도를 보면 저 인간들은 나라와 국민 그리고 그 가족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특종 잡고 자리 보존만 하려는 최악의 저질 집단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검찰개혁, 재판부 적폐 청산, 언론 쓰레기 대청소 그리고 여의도 아귀 포획, 이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야비한 공권력과 부패한 매체에 의해 가정파괴는 멈추질 않을 것이다.
여의도 아귀들은 이른바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온갖 저질적 행태의 극치를 보인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뽑아주고 세금까지 듬뿍 주었더니 하는 짓이란 가족들 뒷조사나 하고 기더기에게 그것을 쉬지 않고 흘리는 짓을 하고 있다. 국책사업 계획이나 미리 훔쳐보고 수십억 혹은 수백억 이상 자기 배나 불리고 있다. 진짜, 재수 없이 잡히던 바다 고기 아귀처럼 가족을 파괴하는 저 아귀들은 도대체 어떻게 쓸어내야 할까?
현직 장관의 가족을 궁지에 몰아넣고 물고 뜯는 정치패 아귀들을 보면 현기증을 넘어 구역질까지 나온다. ‘밥맛도 떨어진다’는 말이 바로 이런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특히 검찰 출신의 일부 여의도 아귀들을 보면 지금 자신이 국회의사당에 있는지 과거 공안분실 조사실에서 학생들 족치고 있는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공권력을 오직 자기 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부 정치 모리배들의 행태는 우리 정치 역사의 운명과 분명 함께 할 것이다. 생각이 다른 정치적 적수와 그 가족을 뒷조사해 뼈까지 발리는 광란의 아귀질에는 뭐가 대책인지도 도무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그런 아귀들은 더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개개인을 물어뜯어 괴멸시키고 때로는 그 가족들 일부를 자살까지 몰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물어뜯어 잔멸할 또 다른 가족을 물색한다. 그런 패턴으로 돌고 또 돈다.
군사정권 5공 시절 많은 친구들의 고향 부모님에게는 경찰과 안기부에서 전화가 왔다. 대학에 간 자녀들이 데모하면 부모님 직장이나 가족이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협박 전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광경을 누런 배지를 단 아귀들이 무슨 완장처럼 생각하고 대놓고 생중계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말인지 아귀의 그르렁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상황도 있다. 오직 한 사람의 인격과 한 가족을 물고 뜯을 생각만 하는 것을 보노라면 인간 언어와 맹수 살기의 경계가 모호하게 된다. 들을 귀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의심스럽지만, 부탁 좀 하자. ‘여의도 아귀들아, 너 좋은 대로 정치만 해라. 남의 가정은 파괴하지 마라, 비열한 짓이다 !’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섭리를 믿는 신앙인으로 세속 정치의 정의(正義)를 바란다는 것은 자기중심적 판단이며 이기적인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객관적 시각을 자기 스스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괴로움과 고통과 그리고 절박한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얼마든지 스스로 같은 아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과 은총이 아니라면 자신도 그야말로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벧후 2:12)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영원히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섭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분열했던 이스라엘 국가가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해 초토화하여 멸망되기 전 이미 여호와 하나님은 무서운 경고를 한 바 있다. 멸망으로 향하는 이스라엘의 정치 운명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아는 지혜와 명철을 우리 시대에도 주시길 다시 간구할 뿐이다.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사 3: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