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대한민국의 진정한 과제,‘기독교선진국’
지난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57년 역사상 처음으로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날 컨센서스(의견 일치)에 의해 한국의 지위가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되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너무 대한민국 중심의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무역확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보여준 유엔무역개발회의에게는 그 회의의 본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나라가 결국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잠정적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닐까? 이것은 자아도취식의 ‘국뽕’으로 빠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대재앙에 직면해서 보여준 국가의 대처 능력 즉 국가의 총체적 위기관리의 전략 면에서 적어도 대한민국은 많은 나라에게 유용한 전략과 방법을 제공한 것은 틀림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올해 경제 성장률 4% 달성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아시아 주변국들을 넘어 세계인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적 약진을 주시하는 중에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이라는 발표를 들었을 때 그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아니었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선진국 지위에 올라설 능력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말로 들어도 빗나간 해석은 아닐 것이다. ‘무역은 경제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도구’라는 UNCTAD의 격언이 있다. 이것을 바로 대한민국이 증명한 셈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여섯 번째로 ‘무역을 위한 원조 공여국(Aid-for-Trade donor)’이 되었다.
선진국(先進國, advanced country, developed country)이란 고도의 산업 및 경제 발전에 도달한 경우뿐 아니라 국민성 발달로 삶의 질 자체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사실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선진국은 경제적 척도와 국가 소득, 그리고 평균수명과 문맹률 등을 고루 갖춘 지수 즉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가 그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은 매년 인간개발지수를 조사하는데 그 지수가 0.9 이상 매우 높은 등급에 속하는 국가를 선진국으로 구분했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와 아일랜드 등이 이에 속하며 주로 북반구에 속한 나라들이 인간개발지수가 높은 선진국들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개발지수는 인간의 지적 수준이 균등하게 향상되고 국민의 문화적 향유(享有) 수준이 질적으로 발전하면서 타인에게도 유익한 공생·공존의 가치를 추구할 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이쯤에서 세상에서 말하는 선진국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간개발지수 문제를 ‘수준 높은 종교 문화의 발전’과 연관 지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우리나라 현재 종교인 분포는 40% 정도다. 10명 중 4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분포를 보면 개신교 17%, 불교 16%, 천주교 6%다. 그런데 눈에 띄는 부분은, 비종교인들에게 호감이 가는 종교가 불교 20%, 천주교 13%, 개신교 6%로 나온 점이다. 근래 개신교 호감은 점점 감소해 왔다. 향후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유지하는 한 선진국으로서 한국 사회에 기독교는 점점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기독교인 감소가 기독교 진리의 사회적 가치가 하락했다는 점은 틀림없는 말이지만, 기독교인의 감소가 기독교 진리 자체가 거짓이라거나 무의미한 비진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의 기독교는 교회의 절대표지인 성경에서 너무 멀어진 무늬만 기독교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느냐와 얼마나 절대진리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기독교 진리를 알고 있느냐는 거의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중세 1천 년의 로마 가톨릭과 성경 중심의 신학과 신앙은 별개였다.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향후 기독교는 더욱 외면당하는 종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가치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세태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독교의 탈가치화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전(經典)의 확실성에 기반을 둔다는 ‘고등종교’라는 기준에서 보면 한국 교회는 점점 절대진리 성경을 멀리한다. 경제적 삶이 윤택할수록 더더욱 종교 심리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경제 발전과 고등 교육의 사회적 확산으로 전개되는 선진국 논리에서 보면 한국 교회의 신학과 신앙은 더욱 그 바닥을 드러낼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경제 논리만 지배하는 선진국이 아닌 수준 높은 고등종교 보유국으로서 ‘기독교 선진국’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 교회는 내부적으로 보면 교회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상황이 더욱 확산하고 있고, 외부적으로 보면 최첨단의 과학 지식과 놀라운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진리는 성경진리에만 철저한 토대를 둬야 한다. 그 토대를 분명하게 확정하지 못하면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세태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드높인다는 것은 틀림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교회의 유일한 표지인 성경의 절대가치를 확정하지 못하면 모든 기독교 신학과 신앙은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말과 동일하다. 선진국이라는 말을 할 때나 들을 때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정말로 성경진리에 뿌리를 둔 ‘기독교 선진국’의 성도인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당대 철학의 본거지인 아테네를 방문하여 철학자들과 변론하며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증하고 확정하는 선교 역사가 나온다. 바울 사도의 13권 혹은 (히브리서 포함하면) 14권의 서신서는 당대 지중해 시대의 지성을 지배하던 그리스 철학을 ‘배설물’로 처리하는 역사적 과정(빌 3:8; 골 2:8)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그리스-로마 철학과 문화에 대한 기독교 복음 진리의 우월성이 확증된 위대한 역사였기 때문이다. ‘가장 고상한’ 기독교 진리의 선진국, 모든 지식을 능가하며 탁월한 정신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성경 진리의 강국, 이것이 다시 꽃 피워야 할 진정한 선진국 문화이다.
7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