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민주, 시민, 자유라는 것
도무지 교사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안산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김교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일상적인 수업과정을 ‘불신’이라는 단어로 정리했다. 기울어져가는 배에서 희망의 손을 맞잡고 교사의 말을 따랐던 수많은 학생들이 수장되었다. 하여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이를 극복할 방안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4월 16일은 교육계에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배웠다. 현실은 반대였다. 자신의 길을 찾았던 학생들은 생명을 부지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학생들은 살 수 없었다. 세월호 사태의 원인을 찾다보면 어른들의 탐욕으로 압축된다. 규정을 위반하여 선박을 개조하고 기준용량을 초과한 채 운행하였으며 선원들은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자신의 살길을 찾았다. 그 와중에 벌어졌던 많은 의문을 규명하려 했지만,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며 윽박질렀다. 대신, 학교에 각종 안전교육을 들이밀었다. 마치 사태의 원인이 안전교육의 부재였다는 뉘앙스다. 따라서 매일 상식적인 주제를 진지한 모드로 전환하여 엄숙하게 안전교육을 해야 한다. 게다가 현장학습을 갈라치면 준 한 달을 준비해야 한다. 요구하는 서류도 많지만, 그 모든 것을 절차대로 하지 않으면 결재가 나지 않는다. 소규모 학교의 숙박형 체험학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규모라서 돈도 되지 않는데 요구하는 서류는 많으니 차라리 안 받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진실은 호도되고 사그라진다.
머리가 큰 학생들에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때문에 학생들은 세월호와 관련하여 좀 더 많은 사실을 알기 원했고 의문이 풀리기를 기대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어떤 사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은 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회과의 목적 중 하나가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학생들의 요구는 교육적 호재였다. 그럼에도 교실에서의 상황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말하자면 정부가 지정해주는 계기교육 외에 다른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험난한 일이다. 이는 곧장 교사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학생들의 불신 풍조, 즉 교사와 교육, 국가에 대한 불신은 장래의 국가로서도 손해다. 신뢰비용은 추산컨대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불신을 걷어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이다. 민주시민 교육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를 끄집어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연히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상의 자유를 교사에게도 허용하여야 한다. 나라 꼴을 제대로 갖춘 민주국가 중에 교사의 정당가입이나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가 있는가. 무능한 정부를 정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성토했다고 징계절차에 들어가는 민주국가가 있는가. 그런즉, 선전선동이 아니라면 냉철하게 사태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찾아나가며 잘못된 점들을 따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정부의 문제점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그것이 설령 거북하더라도 학습의 과정으로 보는 아량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켜 나가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권위도 세워진다. 그것이 곧 교육력이며 국력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분노하는 교사, 당국의 잘못된 행태를 질책하는 교사, 의를 위해 나아가자는 교사가 불순한 체제 전복 세력으로 보인다면 그 나라에 희망은 없다. 같은 의미로 사회정의에 투철한 학생, 사회의 일그러진 행태에 분노를 표현하는 학생이 많은 나라는 희망적이다. 언제까지 중립성 운운하며 피상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식의 교육만 할 것인가.
청와대 게시판에 자신의 실명으로 대통령을 비판하고도 떳떳할 수 있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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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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