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3)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라는 영화가 있다. 중학생 시절에 단체 관람한 영화인데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상영되었다. 사람의 목숨이 벌레만도 못한, 즉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렴풋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미국 기자와 함께 캄보디아를 떠나려는 현지인이 총을 든 자들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애원하는 장면과 주인공이 앞에 펼쳐진 수많은 유골에 놀라는 장면 등이다. 이 영화는 뉴욕 타임스 기자가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유골을 한데 모아 놓은 곳을 방문했다. 숙연해졌다. 해골은 원한에 사무쳐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고 수많은 뼈는 자신들의 슬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당시에 미국의 폭격과 베트남의 침공 및 내전으로 약 200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희생된 사람들의 상당수는 지식인, 공무원, 교사, 부자 등이었다고 하니 기득권자들에 한이 맺힌 사람들의 비이성적 적대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살육의 역사다. 피도 눈물도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그리고 형제간의 참극은 흔한 일이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으로 바뀌었고 물리적 폭력이 정신적 폭력으로 양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잔인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백지설이나 성선설이 옳다는 사람들도 많고 여러 실례를 교과서가 강변하지만, 바울의 고백처럼 사람들에게 선함은 없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일반적으로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보고 ‘착함’과 ‘악함’을 평가하지만 ‘착함’안에서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존재다.
문득 1971년 스탠퍼드 대학의 죄수와 간수 실험이 떠오른다. 당시 대학 내에서 실험이 진행되었다. 연구자는 실험의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대상으로 죄수와 간수의 역할을 맡겼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행동의 이면 상태는 어떠한지를 관찰하려는 것이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원래는 2주를 실험기간으로 계획하였으나 간수들의 행동이 도를 넘어서면서 6일 만에 실험이 중단되었다. 당시의 연구자는 사람들의 내적 기질이 상황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정한 상황에 노출되면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어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기회가 되면 사람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 엑스페리먼트(The Experiment)나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보기를 권한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여행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잔혹성을 말하고 분을 삼켰지만 공산주의라는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을 토벌하고 조선을 일본화하려 했던 사람이 버젓이 대통령을 하며 민족 운운하는 것을 보라. 한국전쟁 시절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학살은 좌우를 막론한다.
얼마 전 1991년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최종 판결되어 당사자는 누명을 벗게 되었다. 하지만 사건을 조작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유죄로 판결한 사람들이 강변하듯이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평할 수는 없다”는 말은 많은 이들의 분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죄수와 간수 실험처럼 특정한 상황에서 그 상황에 몰입하여 옳든 그르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대로 행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비극이고 세계사적으로도 안타까운 역사지만 그것이 그 나라 특유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악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과감하다. 오늘 내가 평안한 것은 튀어 오르려는 악한 속성을 환경적으로 막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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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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