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10-28 23: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4의 길


무한한 교사의 책임
 학교 교사로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높이는 일이다. 높일 수 없다면 최소한 해당 학년의 기초능력을 숙지시키고 진급시켜야 한다. 이런 생각은 어느 나라나 공통적이다. 미국의 ‘아동낙오자방지법(NCLB)’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기초학습 미달자에 대해 교사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시간과 열정을 투입함에도 도무지 개선되지 않는 아이들이 분명 있다. 교사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식습득이 어려운 아이에게는 다양한 원인이 있고 ‘투입하면 산출된다’는 단순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향과 지적능력 등을 파악하고 해결의 중지를 모아 맞춤형 교육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한 명 한 명을 각자의 특성에 따라 어느 선까지 도달하게 만들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가 처한 상황이나 교육적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그런데도 주변 상황을 지워버린 채 ‘교사’와 ‘학생’의 일대일 구도를 가정하고 당위성과 책무성을 근거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지운다. 게다가 교육 당국에서는 기초학습 미달자가 나오는 학급담임교사는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투입하면 산출된다?
 ‘투입하면 산출된다’는 단순논리는 산출되지 않은 것은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산출이 미미한 것은 투입의 양이 미미한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생각의 결과다. 문제는 이런 사고력을 가진 자들이 윗자리에서 교육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하그리브스(Andy Hargreaves)와 셜리(Dennis Shirley)는 이런 사고구조는 잘못되었다고 꾸짖는다. 그들은 미국의 사범대학 교수들로 세계 각지의 교육 흐름을 장기간에 걸쳐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며 강연활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말은 빈말이나 구호가 아닌 실증에 근거한다.
 책임 회피
 하그리브스와 셜리의 공저 ‘학교 교육 제4의 길(The Fourth Way)’은 내용의 참신성으로 교육혁신을 바라는 정책입안자들이나 수많은 교사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한마디로 학교 교육이 변화되어야 하며 그 변화상을 제4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제1의 길은 국가의 지원이 풍부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넘쳤지만 교육의 질적 편차가 컸던 시기다. 제2의 길은 시장주의 경쟁이 도입되고 국가가 교육의 표준을 정한 시기다. 교육의 표준을 정했다는 것은 교사의 자율성이 차단된 상태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교사는 교육표준을 따라 학생에게 전달하는 중간자로서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다. 제3의 길은 시장주의의 장점과 국가의 풍부한 장점을 결합해 교사의 자율성과 책무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 했던 때다. 이런 기준 하에서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이었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제2의 길이었던 셈이다. 저자들은 이런 표준화를 통해 교사들의 상실감과 이직의 증가, ‘점수 따기’ 경쟁으로 전락해 버린 서구의 여러 나라 사례를 들어 잘못된 길임을 말한다. 게다가 학교별 점수경쟁은 교육정책의 실패를 교사 및 학교에 떠넘기는 교묘한 술책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교육실패의 반대급부로 나왔던 것이 혁신교육이다.
제4의 길이란?
혹자는 우리나라 일반 학교는 제2의 길에서 머물러 있고 혁신학교의 경우에는 2.5 어디쯤인가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을 거치기보다는 제4의 길로 건너뛰는 것이 효율적이다. 제4의 길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최상위로 가정한다. 저자들은 제4의 길을 트라이앵글로 설명한다. 즉, 정부는 국가적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하고 지역사회를 비롯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해야 하며 교사들은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마을 교육공동체’의 이상향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마을 교육공동체 사업은 정체된 느낌이 든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을 하지 못한 상태 같다. 이는 충분한 준비 없이 열정 있는 개인에 기댄 탓일 수 있고 교육공동체의 호응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혹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불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아무쪼록 이런 생각이 기우이길 바란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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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