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잊고 있었다
범죄과학연구소 대표인 표창원은 “‘학레기’가 아닌 학자로 돌아가라”는 경향신문(2015.3.26.) 기명 칼럼에서 교수들을 신랄하게 꾸짖었다. “전국 대학 중 교수들의 학생 성희롱이나 성추행, 대학원생들에 대한 사적인 심부름과 인격 모욕, 심지어 논문대필이나 연구업적 가로채기, 연구수당 강탈하기 등 ‘갑질’ 문제가 없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읽다가 감정이 복받쳤다.
잊고 있었다, 대학원생 시절의 기억을.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는지 모른다. 과거의 생생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다른 생각을 하려 해도 금세 머리의 중심을 차지해 버렸다.
성희롱과 성추행 빼고는 필자가 모두 경험했던 일들이다. 여기에 더해 출판과 관련된 장난이나 각종 탈법으로 돈을 만들어 바쳐야 했으니 어느새 공범이 되어 버렸다. 굳이 변명하자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광고 구절은 이상일 뿐이다. 대학원생에게 ‘No’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절대권력을 가진 교수에게 이의제기하면 유치하게 보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졸업논문에 서명을 거부해 졸업하지 못했던 타 대학의 사례도 알고 있고, 권하는 술을 마다해 속된 말로 ‘찍혀’ 자퇴한 친구도 있다. 따라서 최대한 버텨보려 했다. 난감한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주변에 조언도 구하고 잠시 휴학도 했지만 실질적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줄기찬 ‘갑질’은 계속됐다. 그 교수는 스펙이 화려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였으며 명성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제자였던 내게는 유독 모질고 거칠었으며 가르침보다는 단물만 빼먹으려 했다. 수천만 원짜리 연구 프로젝트를 따와 “네가 알아서 다해.”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연구도 연구지만 행정적 절차나 기관에 왕래하며 계약을 하는 일 등 처음 해 보는 것들이 많아 고역이었다. 직장에서는 교사였지만 대학원에서는 노예였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학생신분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간의 물적·심적·시간 투자에 대한 미련이 컸음은 물론이다. 교정을 뒤로하고 걸었던 발걸음은 많이도 무거웠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휴직까지 하며 도전했던 학업은 패배감으로 대체되었고 주변의 시선은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자퇴’ 이후 몇 달간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 그만큼 상처가 컸었다. 다시 학업의 길로 도전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다행히도 좋은 분을 만나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지만 기나긴 11년이었다.
사실, 저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다. 그런 일들을 겪어야만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런즉 지금의 성격 형성은 과거로부터 경험한 많은 일들의 조합 결과다. 고백컨대 기억하기 싫은 그분과의 만남은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러니 매사를 긍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이듯이 개인사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원망과 한탄의 삶을 사는 대신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고 그것을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머리로 그리 배웠고 가슴으로 공감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요셉이 온갖 수모와 오해 등에도 자신이 처한 환경과 여건에 충실했던 것은 꿈에 나타난 일들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굽으로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조차 환대할 수 있었다. 요셉의 자세는 삶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각종 사안에 대한 태도의 모범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주변의 많은 일을 해석하고 추론하여 안정을 얻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분(憤)은 어쩐 일인가. 잊었다고 생각했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사는 인생이라 자인했지만 보란 듯이 나를 격동시켜 버렸다. 그것도 몇 문장으로 말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 (롬 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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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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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는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