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0-06-30 19: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교회체제개혁 총론 (11)


3. 체제개혁의 실제

3) 형식주의 의식 개혁

개신교의 형식주의적 의식 개혁은 교회의 체제 개혁에서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이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부채질하는 외식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의 기존 제도와 의식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경적 근거에 따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성경 내용에 대한 오해나 신학적 미숙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교회 의식을 만들어 집행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교회 의식이 세속적인 국가 기관이나 무속 또는 일반 종교의 의식처럼 권위 의식이나 외식을 조장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대개 종교적인 의식은 주로 대중 종교나 무속 행위에서 성행하는데, 이는 잘못된 관습일 뿐이다. 사실 일반 대중이 종교에 쉽게 입문하는 데는 복잡한 교리보다는 종교 의식이 간편하고 효과가 크다. 곧 간단한 의식을 갖춘 형식적 종교 행위가 대중들의 종교심을 비교적 강하게 자극한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종교의식이 성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형식주의에 기초한 잘못된 의식들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리고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진리 안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른 성도의 교제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교회의 형식주의적인 의식들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이같은 의식들을 크게 분류하면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예배 의식이고, 둘째는 성례 의식이며, 셋째는 기타 의식이다.

(1) 예배 의식의 개혁

개신교의 예배 의식은 총회가 제정한 헌법에 따른 예배모범에 의해 마련한 인위적 제도다. 개신교의 목사나 감독은 성경적 근거도 없는 예배 의식을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흉내 내며 그럴듯하게 절차를 따라 진행한다. 곧 자기 스스로 제사장이나 된 것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련된 소위 성전에서 연보를 제물로 삼아 제사 의식을 집례 하듯이 근엄하게 진행한다. 그리고 목사나 감독이 없이는 예배와 각종 의식을 집행할 수 없도록 제도화했다. 그리고 주일 낮 예배를 ‘공예배’라는 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로마가톨릭의 별칭인 ‘공교회’나 ‘성공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다시 말하면 제도적으로 예배 의식을 만들어 공식화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종교개혁의 제2 원리인 ‘만인제사장’이라는 슬로건 역시 온데간데없다. 이러한 현상은 지엽적인 신학적 차이나 이권에 따라 난립되어 있는 각 교파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근래에 이르러 개신교의 예배 의식이 세태와 실리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소위 부흥 집회 및 은사 집회 또는 열린 예배라 해서 교파마다 교회마다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교회 헌법에 명시한 예배모범마저도 무색케 할 정도다. 이는 교리보다 부흥이라는 실리를 앞세우는 데서 오는 잘못된 현상들이다. 마냥 경건해야만 한다는 기존의 예배 의식이 소란스럽거나 무질서하고 때로는 연예인들의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끝판까지 치닫는 개신교의 예배 의식은 마땅히 개혁되는 것이 옳다. 이는 개신교의 예배란 신령한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곧 영적 예배이기 때문이다.

ㄱ. 은사를 실행하는 산 제사

개신교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들이 은사를 실행하는 삶을 통해 드리는 산 제사다. 이는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은사를 실행하며 살아가는 생활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말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지체된 성도들로 하여금 받은 은사를 실행하도록 감화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지체된 몸으로 제물을 삼아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도록 감화하신다. 그러므로 예배모범에 의해 주일마다 절차에 따라 드리는 예배는 산 제사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위한 경건한 성도들의 모임 곧 ‘경건회’라는 표현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신약 교회의 영적 예배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이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라 각각 받은 은사대로 선한 일에 동참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ㄴ. 머리와 연합된 영적 예배

개신교의 성도들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 예배를 드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아니한 개인으로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예배는 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산 제사를 드리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제사장으로 영적 예배 곧 산 제사의 봉사자가 되어 사는 것뿐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경건하게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성경을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 되어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눌 뿐만 아니라 은사 따라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게 된다.

(2) 성례 의식의 개혁

개신교는 대부분 세례와 성찬을 성례로 받아들여 예식을 거행하는 의식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당시 로마가톨릭의 일곱 개 성례를 타파하면서 아쉽게 남겨놓은 잔재들이다. 세례와 성찬의 복음적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과오의 결과다. 본래 개신교의 절대적 표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이다. 곧 성경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는 것만이 교회 존립의 유일한 표지라는 뜻이다. 세례와 성찬은 성례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는 삶을 의미한다.
교회의 성례로 인한 잘못된 의식 제도는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보다는 형식적인 의식에 치우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곧 의식 제도에 따른 성례를 통해 영적인 은총을 받으려는 과오를 범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례와 관련된 의식과 제도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성도의 삶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 옳다. 곧 세례는 택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성찬 역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전파하는 삶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ㄱ. 세례는 죽음과 부활에 동참

개신교의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죽고, 새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합하여 함께 거듭나는 영적인 삶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형식적인 제도에 따라 성례 의식을 집례하는 것은 단순한 예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많은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이유 역시 그러하다. 교회의 의식과 그 제도는 성도의 신앙이 형식에 따른 외식으로 치우치게 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의식보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의 실제적인 삶을 중시하는 것이 옳다. 

ㄴ. 성찬은 대속의 죽음을 전파

개신교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전파하는 삶을 의미한다. 곧 성찬에서 사용하는 떡과 잔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전파하는 삶에 성찬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교회가 의식적으로 성찬 예식을 행하는 것은 형식주의를 조장하며 본질을 호도할 우려가 많다. 고린도교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찬이 형식에 따른 의식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실제로 함께 식사하며 사랑으로 교제하는 생활이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성찬은 의식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교통하심에 따른 성도들의 교제와 복음 전파의 삶에 의미를 두는 것이 옳다. 

(3) 기타 의식의 개혁

개신교는 교회 행정에서 로마가톨릭의 성례와는 달리 필요한 각종 행사를 정해진 의식과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격에 맞지 않는 지나친 허례허식이 자행된다. 가령 성도들은 자신들의 가족 행사로 모이는 각종 경조사를 의식을 갖추어 진행한다. 이는 교회 생활의 원천인 가정 교회에서부터 영적 예배인 산 제사가 왜곡되는 허례허식의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그래서 교회나 가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들은 세속적인 관습이나 다름없는 의식에 따라 예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성도들의 신앙 성숙과 문화 수립에 유익보다는 손실을 훨씬 더 크게 조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에서 예배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개념과 동일하다. 그러나 신약시대 예배는 구약시대의 의식적인 제사와 다른 제사 곧 영적 예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행정이나 성도들의 가족 행사에서 예배라는 이름으로 각종 의식을 진행하는 것은 절대로 합당치 못하다. 대부분의 행사들이 주로 행사 주인공의 업적을 기리거나 칭송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이러한 개인적인 행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ㄱ. 교회 행정의 허례허식

개신교는 행정상 필요한 여러 가지 예식을 예배라는 이름으로 거행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목사 위임식을 비롯한 장로 장립식 또는 집사 안수식과 각종 취임식 및 이임식 등이 있다. 그리고 교회당 기공식과 준공식 또는 헌당식 및 입당식 등도 있다. 이러한 교회 행정상 필요한 각종 예식들이 지나친 허례허식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곧 허례허식의 각종 예식들은 교회 직분을 세속적인 벼슬이나 권력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시기와 질투와 경쟁의식을 조성한다. 이에 신성한 교회 직분이 매매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교회 시설물이 거룩히 구별된 성물로 둔갑하는 무속 현상도 빈번하다. 이러한 부패 요소를 담고 있는 폐습은 반드시 삼가는 것이 옳다.
ㄴ. 가정 행사의 허례허식

성도들은 가정 행사로 맞이하게 되는 각종 의식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곧 자녀들의 약혼식과 결혼식 또는 각종 기념식과 개업식 그리고 장례식과 추도식 등이 있다. 그런데 이 행사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허례허식으로 얼룩질 뿐만 아니라 신분을 과시하거나 신분 상승을 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러한 인간의 업적을 기리는 사적인 각종 경조사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폐습은 절대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 성숙한 성도라면 가족 행사에서 스스로를 과시하려는 허례허식에 치중하지 않는다. 다만 건덕을 위해 성도의 신앙적 품격이 담긴 건전한 절차에 따라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음 호에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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