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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30 10:2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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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의 출처. 발행기관: 개혁신학회, 간행물: 개혁논총 19권 0호, 발행 연도: 2011년, 페이지: 111-145(35pages)


2.3 사회구원과 종교 다원주의

시민 사회의 기본적 인권 회복 혹은 자유와 해방의 차원에서 타 종교의 자유와 타 종교와의 대화를 선언하였고, 이러한 논리는 ‘종교의 다원성’ 이름 아래 잘 포장되었다. 이러한 종교의 다원성의 실체는 WCC 인터넷판 글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San Antonio 세계선교대회(1989)에서 채택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의 다른 어떤 길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는 선언을 재인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WCC의 종교 다원성 논리에 비추어, 비록 기독교의 유일성을 언급하는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WCC가 “어디에서도 종교 다원주의를 수용하거나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WCC가 공개적으로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타 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존재한다고 인정한 내용을 볼 때, 실제적으로는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개종을 강요하지 않도록 주장하였었다는 것은 WCC가 전개한 기독교의 독특성 논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WCC의 종교 다원성은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을 가진 유사 종교 다원주의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사회구원적 봉사 활동을 위해 단순한 ‘협력’ 또는 ‘도움’의 차원에서 타 종교를 인정하자는 의미로 출발된 ‘종교 다원성’이 포괄적 구원론의 덫에 걸려 이제는 거의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독특성을 상실케 하고 말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1990년 바르 선언(Baar Statement: Theological Perspectives on Plurality, Baar, Switzerland)에서 우리는 이러한 WCC의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을 결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외형상 혹은 논리 구조상 종교 다원성을 표명하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종교 다원주의나 거의 다름없는 유사 종교 다원주의라 하겠다. WCC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회구원적 연합체를 구성하기 위해 종교 다원성을 제창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종교 다원성은 실제적으로 유사 종교 다원주의 혹은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을 낳았으므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바르 선언은 세계의 공통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타 종교와 손잡고 대화해야 한다는 사회구원적 동기를 밝힌 후, 신학적으로 보아 필연적으로 종교 다원성을 긍정해야 할 것을 언급하였다. 창조주 하나님은 태초부터 모든 피조계에 현재하시고 섭리하시며 또한 성경은 그의 사랑과 애정으로 모든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하였다. 하나님만 인류 전체의 주가 되심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었다. 인류 역시 나름대로 그 하나님에게 반응하였다는 것이다: “인류는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자기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현재와 활동에 반응하였다.” 따라서 우리와 예배 형식과 신학적 술어는 다를지라도 타 종교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의 반경 안에 들어있는 것이라 말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경험을 같이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 없기’(CWME, San Antonio, 1989)” 때문에 그리고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요 4:7-24)에게 말씀하신 것과 백부장의(마 8:5-11) 믿음을 칭찬하신 것 등에서 이스라엘 밖에 구원의 사례가 있음을 증거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타 종교인들은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 선언에 따르면 기독론적 구원론은 제한적으로만 효력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바르 선언은 “그리스도 사건은 우리에게 있어 모든 인류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적 의지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기독론의 의미를 현저히 축소시켰던 것이다.

3. WCC의 기독론

WCC의 사회구원적 교회 연합체 구성과 종교 다원성 제창을 가능하게 하는 신학적 근거 중 하나는 왜곡된 기독론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하나님의 내재성 혹은 포괄적 구원의 틀 안에 제한시킴으로써 전통적 기독론을 거의 해체시켜버렸다. WCC가 기독론이 정신적 기초임을 인정한 마당에, 심각하게 훼손된 기독론의 독특성은 겨우 ‘유사’ 기독론으로만 남게 하였다. 이는 곧 결과적으로 사회구원적 교회론을 심화 발전시켰고, 종교 다원주의적 경향을 더욱 공고화하였다. 지금은 거의 탈기독론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3.1 하나님, 구세주, 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사회구원적 교회 활동을 목표로 삼았던 WCC는 그 신학적 기초로서 기독론적 고백을 수용한 것은 사실이다. 1948년 WCC 첫 총회에서 채택된 성명서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임을 선언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인정하는 교회들로 구성된다. 교회는 그분 안에서 그들의 일치를 발견한다”라고 고백하였고, 심지어는 “1910년 브렌트 주교와 그의 동료들이 신앙과 직제 운동을 시작했을 때 그들은 교회들의 에큐메니칼 만남[의]…근본 원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세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기독론은 실제로 사회구원적 교회 연합 혹은 교회 사역의 느슨한 하부구조로서만 역할을 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매우 취약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였다. WCC의 기독론은 점차 바르트 신학을 모방하면서 논리적 구조를 보다 정교화하였다. 제3차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1952년)부터 시작하여 제3차 WCC 총회(뉴델리, 1961년)에 이르기까지 칼 바르트의 화해론이 뚜렷하게 중심적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독론은 화해론 안에서 다루어지게 되어 화해의 역할자로서의 구속 사역이 집중 부각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은총에 따른 성육신의 필연성, 은혜의 보편적 혜택을 누리는 인간 등 바르트의 중심적 신학 사상이 그 기초를 이루었던 것이다. 바르트를 따라,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은 화해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보편적 속죄를 통해 어떤 사람도 정죄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이제 모든 사람은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게 되는 새 길에 들어섰다고 확신하는 등 인간 모두와 기독교인 사이의 유대를 선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논의한 타 종교와의 ‘대화’라는 주제, 종교적 다원성의 논리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바르트의 기독론조차도 몰트만의 영향을 받아 보다 더 급진적으로 적용, 발전되기 시작한다. 1968년 제4차 WCC 총회(웁살라)에서부터는 기독론을 정치, 사회, 경제적 해방에 중심적 기초로 세워, 마침내 사회구원적 기독론 논리 구조를 정교하게 구축하였다. 바르트의 ‘사건’이 되는 말씀론 혹은 계시론을 사회구조 악 속에서의 ‘사건’으로 일방 규정함으써 이제 그 ‘사건’은 기독교인이 되게 하는 결단, 혹은 개종하게 하는 결단과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해방적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복음전도에 있어서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응답하는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그러한 전환은 종교적인 선택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다.…우리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하며 또 이러한 변화가 항상 태도와 관계의 실제적 변화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새로운 삶은 인류의 하나 됨을 갈라놓는 인종적, 국가적, 종교적 및 다른 장애물들을 타파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공동체를 위하여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아울러 기독론은 더 이상 개인적 구원에 적용되어야 할 논리가 아닌 구조 악 해방을 위한 ‘사회적’ 새로운 삶 혹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이제 개인적인 사항이 아닌,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며, 세상의 구조 악 개선을 위한 투쟁임을 말하며, 여기에 그리스도는 당연히 정치적 메시아요 구세주로 규정되는 것이었다. 다음의 5차 WCC 총회(나이로비, 1975) 선언문이 이를 증거한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사항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다.… 오늘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함은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총회에서 논의하였던 모든 문제, 즉 죄와 용서, 힘과 무기력, 착취와 비참, 정체의식에 대한 전세계적 모색, 기독교적 동기부여의 광범위한 상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인 목마름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투쟁하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권문상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