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알 것은
생전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따라 읍내에 있는 외삼촌댁에 갔다. 호롱불 대신 환하게 밝혀주는 전깃불과 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보다 더 신기한 일은 식사 때가 되어 식탁 앞에 빙 둘러앉아 수저를 들려는 순간, 온 식구들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더니 “날마다 양식을 주셔서 먹게 하시니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아멘” 하고 난 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했다. 육신의 아버지가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또 다른 존재를 두고 아버지라고 부른 생소한 환경에 낯설기만 했다.
그 시절,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서 식모까지 두고 왕자와 공주로 대우받는 호화로움, 그런 언니 오빠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자신이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기분이었다. 나도 그 아버지를 만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부턴가 내 마음속에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꼭 알아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철부지 한 소녀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은 망각과 상실을 가져다주었고, 때로는 절규하고 때로는 방황하며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산산이 부서진 많은 꿈들 앞에서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날 것만 같아 발을 동동 구르며 허공을 향하여 ‘거기 누구 없소, 나를 구원할 자 말이오’ 갈급한 마음으로 허탄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 성경을 통하여 비로소 만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사랑 고마워 얼마나 울었던가. 그런데 성경은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다. 여기는 이 말하고 저기는 저 말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했다가 지키지 말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공로주의가 맞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다고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주시고 귀를 열어주셔서 성경을 성경대로 듣고 볼 수 있게 섭리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계시이고, 하나님은 그 이름 ‘여호와’의 의미처럼 모든 일을 언약하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성경을 통해 깨닫고 믿어지게 했다. 그리고 그 언약대로 성취하신 예수가 바로 구약에서 언약한 그리스도이시고, 성령감동을 받아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 모두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여 그를 경외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은 물론이요, 여호와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여, 내 영혼을 하나님 영역에 두고, 그 진실은 내 가슴에 담아, 그 깊이를 더해가는 것은 최대의 선물이요 가치로, 진리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갖게 했다.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는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다. 전능하신 분이시고, 신실하시고, 주권자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고,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주관에 의하여 계시된 성경만이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타종교들보다 우월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경을 잘 읽고 바르게 해석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신앙을 불러 일으켜 준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자유로울 수 있는 점에서 일단 긴장을 풀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고 염치를 모르는 세속에서는 평강을 누릴 수 없다. 성령께서 함께하지 아니하면 미궁을 헤매며 방황하는 비운에 처하게 된다. 내 힘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께서 성경진리를 깨달아 알고 확신하게 하는 신앙으로만 가능하다. 신앙인으로 우뚝 서게 하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의 값어치는 바로 성령께서 중생한 이성에게 성경이라는 교재를 통해서 일깨워 준다.
육체는 점점 쇠퇴해 가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으로 출발하여,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참담한 고비마다 참고 견디게 한다. 성경을 조금 알고서, 내가 믿음이 좋으며 유식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싹이 돋아나는 정도를 지나게 하여 성경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고 가지를 뻗어 결실기를 향해 달려가게 하심에 감사가 있다. 성경을 몰라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단의 종노릇하며 산다면 얼마나 처절하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짐승권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성경이고 보면, 성경 권위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도 사단을 하나님말씀으로 이겼다. 성경말씀은 죄 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사는 데 결정타다. 모르면 속고 산다. 속고 속이지 않으려면 먼저 성경을 배워야 한다. 말씀은 내 영혼을 살찌우게 하고, 깊은 사색의 골짜기로 나를 몰고 가기도 하고, 애써 안으로 삭힌 고통의 체험들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도 한다.
나에게 성경을 깨달아 알게 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사사롭게 인간 개개인이 자기 마음대로 풀어서는 안 되는 줄도 몰랐을 것이고, 왜 성경관이 중요한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진리의 기준이 흔들리는 데 있었다. 신·구약 성경에 관심을 집착시키지 아니하면, 교만하여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되고,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이 일어난다고 디모데전서에서 밝히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서론도 없고 결론도 없는 밑도 끝도 없는 말로 잘못 가르친다 하여도 그대로 순행하며, 자기에게 유리하면 칭찬하고 자기와 이해가 엇갈리면 멀리하고 헐뜯으며 내가 잘난 줄 알고 살았을 것 아닌가. 성경이 말하는 바른 하나님, 이런 엄청난 귀한 진리를 태어나서부터 깨달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말로 성경은 알아야 한다.
강남 제비도 예쁜 고추잠자리도 떠난 하늘은 유리알같이 투명하고 호수같이 잔잔하며, 파란색을 수놓은 듯 청명하기만 하다. 상큼한 바람이 까칠한 햇살을 몰고 와 풀꽃 이마에 입맞춤한다. 이 가을의 서정을 노래하는 속에 행복이 가득하다. 메마르지 않는 정서 속에 산다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고 보면 그의 따뜻함이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요 그의 속성의 언어들이다.
외삼촌 집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신기하고 이상히 여겼던 나였었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계신지 안 계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인데,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너무도 분명하게 살아 존재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하신 것은 나에게 있어 넘치는 은혜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알 것은 오직 성경,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