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알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고 있다. 여호와는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으로,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언약하시고, 그 언약대로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혜사 성령이 나로 알게 하고 깨닫게 한다. 이렇게 성경신학을 통해 언약성취 섭리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되고, 그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5대속성(전능성, 신실성, 주권성, 영원성, 자비성)이 드러남으로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믿게 된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피조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섭리역사와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과, 그리고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를 드러내 알게 한다. 모든 사실 내용을 의미중심으로, 성경만 하나님 여호와 계시의 절대적 증거로서 결국은 작정하고 예정된 대로 다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못 하는 일이 없음을 『성경적 기독교』(박용기 저)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지나간 역사에 대한 해석과 지금 당면한 사건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고, 내일에 대한 염려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 ‘진짜 하나님 살아계시는구나’하는 생각은 나로 평안을 가져다준다. 정말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서 답답하게 살 수밖에 없는데, 놀라운 빛을 비추어주셔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하나하나 터득해 가며 살 수 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시편에서 말하는 대로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영원하여서 선하시기도 하고, 또 모든 신에 뛰어나시기도 하고, 그리고 홀로 큰 기사, 어떤 일이라도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한다, 험한 세상 다 달아진 삶이라도 나로 그 능력의 말씀을 힘입어 살게 하심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기독교 신관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5대속성을 지니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다 작정해 놓으신 그 뜻을 계시세계에,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형상세계에 펼치는 일을 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영원 전에 구원할 자와 버릴 자로 예정한 자들을 그 예정대로 버릴 자 버리고, 구원할 자 구원하는 그 역사를 하나님이 해 가신다. 무슨 개소리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게 하거니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야기하는데 작정과 예정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뜻을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섭리하시고 이루신다.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하나님의 존재가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신관에 대한 관심이 더해진다. 오직 한 분 ‘여호와’. 다른 신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생사화복, 그리고 권세까지도 마음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무궁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깨닫고 믿어지게 되면, 인간은 더럽고 추악할 뿐 아니라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지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여,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하고 인내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로서 우주와 만물은 물론 인간의 구원과 멸망까지 영원한 작정과 예정에 의하여 주관되고 섭리되어진다. 그래서 주권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섭리됨을 믿어지는 믿음에 이른 만큼 은혜의 감동 속에서 살게 된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초월한 영원자존하신 분이심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 이 세상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게 되고,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며 살아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항상 변함없는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고생을 해보고 돌아온 탕자는 그 사랑에 감동될 수밖에 없다. 모든 일에 의미 없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하고, 범사에 여호와 인정하게 하며, 만족하여 감사하게 하신 생활은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모른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더욱이 신앙인이 성경을 제대로 모른다면 그보다 더 큰 수치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피곤한 일상에서 안식을 찾지 못해 삶의 허물을 둘러쓰고 속이고 속는 죄가 가득하여, 서럽게 울고 또 울며 살아갈 것이 뻔하다. 세상은 갈수록 살맛을 잃어가고, 자꾸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성경을 읽고 또 배워야 할 성도들은 하나님 이름,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그냥 사람 말만 듣고 믿는다고 말한다.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잊어버리면 다 똑같다. 인간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휘두른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지 않으면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깨닫게 되었다, 배웠다,’ 하는 것은 어쨌든 하나님께서 교육을 받게 했음을 뜻한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주신 시련과 고통이 그게 본심이 아님을 알게 하고, 그 일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고 경외하게 하려는 뜻깊은 섭리였음을 깨닫게 한다. 알고 깨닫게 되는 그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나는 가끔 친구들로부터 “성경공부, 그게 도대체 무슨 재미람”하고 핀잔도 더러 듣게 되지만, 상관없다. ‘모르니까 소통이 안 되는구나’하고 만다. 이해하지 못하는 말은 아무리 나름대로 잘 표현한다 해도 헛소리가 되고 만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무엇이 있던가. 오래전 일이다. 찬바람이 폭포처럼 몰아붙이는 밤이면 공허감이 들고 무서웠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외롭고 힘들고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분노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을 때, 내 앞에 다가오는 책이 바로 『성경적 기독교』(박용기 저)였다. 나로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 그 길었던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했다. 하나님 말씀이 내적으로 흡입되면서 한동안 심장이 떨리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 발자국도 걸어갈 수 없음을 경험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뜰 앞에 서 있는 꽃 한 송이도 벌의 입맞춤이 아니고는 피어날 수 없듯이. 깨어진 질그릇 조각같은 보잘것없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절대로 오늘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나를 택했을까. 어쩌다가 나로 여호와 경외하며 살게 했을까. 정말 여한이 없다. 하나님을 모르는 저들은 강한 자, 누군가를 절대화해서 우러러 추앙하고, 밤낮으로 숨 가쁘게 뛰고 있다. 불쌍한 저 인간들은 어깨동무하며 참 진리를 대적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확고하고 분명한 ‘여호와 신’은 살아 존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