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신실성 찬양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시편113:1~3)
언약자손으로 여호와의 권능에 대한 찬송과 구원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노래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언약대로 이루어 주신 섭리를 통해 계시하신 여호와의 신실성을 찬양케 하시려는 계시섭리이다. 그 목적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깨달아 알고 그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려는데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택한 백성으로 찬양해야 할 까닭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하셔서,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으신 자이시고, 언약백성은 여호와의 소유이므로 그의 백성이고,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에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고 노래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 어디서나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다는 사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므로, 그를 경외하는 자는 다 지각이 있어 그를 찬송함이 영원할 것을 노래한다.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의 결국은 여호와께서 언약대로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지만, 악인의 결국은 언약자손의 승리를 보고 분통이 여길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그들의 길은 망한다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노래 부른다.
다윗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의 말씀을 성취해 주심을 근거해서, 언약자손으로 찬양케 하시는 섭리는 장차 언약대로 오실 메시야를 비롯해 그의 몸 된 교회로 여호와의 신실성을 찬양케 하시려는 계시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첫 아담에게 신령한 복으로 준 언약을 상실하게 했지만,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려고, 둘째 아담이신 예수를 메시야로 보내실 것을 언약해 주셨다. 그 확증으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열조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이루어 주시는 역사 섭리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들을 주제로 노래한 찬양과, 끝까지 변치 않고 이루어 주신다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메시야를 언약하시고, 신약에서는 언약하신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성취해 주심으로 하나님이 신실하신 여호와이심을 계시해 주셨다. 그 여호와는 마땅히 찬송을 받으실 분이시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속성으로 과거에 이루신 일, 현재에 이루시고 있는 일, 미래에 이루실 것을 찬양하도록 했다. 다윗을 불러 구원해 주신다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라는 간구를 노래하도록 섭리하시고, 그 간구대로 이루어 주셔서 기뻐한다는 서원과, 여호와의 통치와 권능에 대한 찬양을 노래하도록 섭리했다.
아무리 여호와께서 함께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완전할 수 없다. ‘내가’ 하려고 하는 불신앙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다윗으로 약하게 해서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분명했다. 여호와의 은총과 신실하심으로 자신의 허물에 대해 주께 사죄를 간구하고, 자기를 수렁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여호와의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원수에게서 고난을 당하는 자기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며 노래했다. 그는 주 여호와를 향하여 주는 자기의 소망이시며,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 어미 배에서 취하여 내신 바 되었으므로 항상 주를 찬송한다고 하며, 주는 자기의 견고한 피난처 되시고, 주를 찬송함이 종일토록 자기 입에 가득하다고 노래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는 시련이란 절대 나쁜 일이 아니고,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를 받게 된다. 영원한 때로부터 정해놓으신 그 뜻을 역사 속에서 차근차근 이루어져 가게 하시는 여호와, 유다지파에서 출생한 다윗을 왕위에 올려 앉혀,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범사에 하나님 뜻대로 이루어져 간다는 대전제 아래서, 하나님이 죽이면 죽고 살리시면 살고, 다윗으로 주의 이름을 노래하도록 했다. 야곱 때부터 마음을 정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창세전에 하나님의 생각 속에 깊이 담아둔 비밀을 계시하기 위해서, 당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왕으로 정해 놓고, 고난 가운데서 다윗을 보호하여 주신 것은 “유다 사람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다고 말씀하신 뜻을 이루시려는 섭리”이다(사무엘상 16:1).
그런데 다윗에게 시련이 시작되었다. 삼차에 걸친 그 수난은 다윗 자신이 똑똑하고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자라게 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남의 아내를 취하는 실수를 범하게 하고, 그의 남편을 죽인 죄에 대한 채찍을 가한다. 그래서 다윗 왕가의 비극으로 다가오게 한다. 어쩔 수 없다. 하나님이 버려 놓으면 죄짓고 살게 되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면 죄에서 벗어나 살게 된다. 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륜을 따라서 다윗을 그런 함정에 빠져들게 하셨고, 그 이유는 죄 가운데 가두어 놓고, 은혜로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윗을 죄의 함정에 빠트려서 가두어 놓고 그 죄를 용서하여 준다. 하나님은 다윗의 생명을 노린 사울의 기를 꺾어 버렸다. 그러나 다윗으로 겪게 하는 타락과 비극이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윗이 감동에 북받쳐 어찌 통곡하지 않겠는가.
다윗으로 많은 수난을 겪게 하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섭리이다. 다윗으로 부르게 하는 그 족적의 노래가 여호와의 은총에 대한 감동으로 부르는 노래임을 깨닫게 한다. 그 은혜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송은 마음이 훈훈하고, 정신이 맑아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시편의 노래가 내 삶의 등불이 되고, 내 생활의 양식으로 삼아야 할 부분임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날들을 생각해 보면 절망하고 좌절하게 했을 때, ‘이제는 내 인생, 이렇게 끝나는구나’ 했던 장면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럴 때마다 뜻하지 않게 불쑥 나타나 나를 일으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 어려울 때나 형통할 때나 변함없이 오직 여호와의 이름만을 의지하고 사는 지혜와 총명을 더하여 주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나를 보호해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살아계신 여호와께서 나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 살피시고 인도하시며, 나의 나아갈 방향을 정해 놓으시고 내 마음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를 찬송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실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