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가 열리고
성경에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치르게도 한다. 사사기가 그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사가 있을 때는 하나님 경외하다가 사사가 없으면 또다시 우상을 섬기기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그래서 불순종한 언약자손들을 하나님께서 시험(사사기3:7~16:)하는데, 사사시대 전반기 후반기를 통하여, 십삼 명의 사사들을 세워서 대적들을 멸하고 승리하게 해서 여호와의 권능을 깨달아 알도록 섭리한다. 말하자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섬기게 하려고 시험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섭리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게 하시고,(롬4:25) 낮아지게 했다가 높아지게 하신 섭리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사실을 성경강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박 용기 저1492p)
웬만한 일에는 두려움 없이 마음이 단단하다 해도 사사기를 대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실로 복잡하고 다기하고, 악행과 악심이 가득하다. 그래서 사사기를 그냥 읽는 나로서는 설명이 안 되지만, 여호와께서 자꾸 사사기로 눈을 돌리게 하고, 인생의 반성으로서 읽을 수밖에 없다. 성경은 죄인의 눈으로 볼 때 그 참뜻이 보인다더니, 극명한 진리의 수밀도 같은 맛과 향이 숨어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바울이 고백했듯이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면서, 사사기 내용 속에서 적지 않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셋방살이를 면한 과부의 기쁨이랄까, 물이 흘러가듯 언약성취사 중심으로 일관성 있게 논리적 체계를 세워 의미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성경강론(박용기 저)을 따라가면 읽기에도 편하다. 논리에 억지가 없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 주므로 현실 의식 속에 접목시켜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있으면 왜 그런지 마음이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고 흥하게 하며, 때리고 싸매고 하는데도, 만사를 제치고 마알간 호숫가를 거니는 기분이요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오늘은 사사시대 전반기시험(3:7~9:)가운데 옷니엘, 에훗 사사를 통한 시험(3:7~31절)을 살펴보았다. 옷니엘 사사를 통한 시험 가운데, 백성이 우상을 섬김으로 구산 리사다임, 메소보다미아 왕에게 종노릇하게 팔아버린다. 노예 생활 하던 백성들이 고통스러우니까 하나님을 구하게 된다. 울고불고 통곡하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옷니엘이라고 하는 첫 번째 사사를 보내준 것이다. 대적의 손에 붙여진 백성들로 여호와께 부르짖게 해서 구원해 주는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노예 노릇만 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벗어나게도 한다. 사사를 통하여 백성들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해서 여호와를 잘 경외하게 한다. 그런데 옷니엘 사사가 대적을 치고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죽는다.(3:10~11) 이스라엘 백성들, 사사를 통하여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웠지만, 사사가 없으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기 때문에, 사사가 죽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싫어하는,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잘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을 주신 여호와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데도, 여호와께서는 총명한 지혜를 주지 않고, 결국 구원자 에훗과 삼갈을 통한 시험이 있게 된다.(사사기 3:12~31) 백성의 악행으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을 섬기게 한다. 모압 땅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요단 동편을 점령했던 땅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모압을 강성하게 하여 에훗시대에 모압 왕에게 넘겨 속국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를 짓거나 과일을 재배하거나 짐승을 기르거나 하면 모압 왕에게 전부 조공으로 바쳐야 하니까 얼마나 고달프고 배고프고 힘들었겠는가. 여호와께서 사사를 보내면 평안하다가, 사사가 죽으면 이방민족에게 팔아버리거나 이방민족이 점령하거나, 이방 왕을 섬기게 한다. 그래서 백성들로 살려달라고 부르짖게 한다. 여호와께서는 구원이 여호와의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는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므로 여호와 스스로의 능력만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신체상 정상이 아닌 왼손잡이 에훗을 이스라엘 자손의 한 구원자로 세운 것도, 구원의 능력이 에훗 사사에게 있지 아니함을 보여준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에훗으로 사명을 성실히 이행하게 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에훗의 확신에 찬 외침이다. 패배와 승리는 여호와 손에 달려있다. 에훗은 여호와께 받은 사명을 수행한 것이다. 결국 여호와께서 에훗으로 모압의 왕, 대적을 죽이게 하고, 그들의 항복을 받으므로 팔십 년 동안 태평했다. 에훗 후에 삼갈이 잠깐 사사가 되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을 치게 한 것 또한 여호와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 살아계심은 물론이고, 하나님 여호와를 깨달아 알고 경외하며 섬기게 하려는 섭리이다.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는 이유가 역시 깨닫게 하려는 것인데, 똑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형제까지도 그 삶의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기에 여호와께서 각자 경험하게 해서 깨닫게 한다. 사색이나 생각만으로는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구체적인 계획에 의해 아주 세심하고 치밀하게 섭리해 가면서, 때로는 돼지우리를 갔다 오게 하고, 때로는 돼지우리보다 아버지 슬하가 훨씬 행복하다는 양쪽을 다 경험하게 해서,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백성 만들어 간다. 시험을 통하여,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선한 뜻을 기억하게 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기쁨을 안겨준다.
사사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 주는 판단자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사사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보낸 보혜사 성령이 사사이다. 이스라엘이 사사가 나타나면 승리하듯이, 오늘도 살아 존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성경을 통한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승리의 확신을 말해준다. 아무리 화려한 꿈을 가지고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른다면 어차피 인생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약 백성들로 여호와의 권능을 깨닫게 하려고, 여호와께서 앞으로도 언약 자손들의 시험은 끊임없이 반복되어지게 하지만, 그런데 알고 보면 재미와 사는 맛이 거기에 있다. 여호와께서 답을 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