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라 시대의 시험, 그리고 찬양
하나님께서는 백성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도록 교육하시려고 곤고한 날과 형통한 날을 겸하여 준다. 이러한 섭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이 악을 행하는 것은 지도자가 없어 여호와의 능력을 보이거나 여호와 경외하기를 가르쳐줄 자가 없기 때문에 또 범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악한 백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방 왕에게 학대를 당하게 하여 부르짖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는 이미 여호와의 작정섭리 안에 예비된 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의 능력을 찬양하게 한다.
그러니까 드보라 사사가 나타나기 전에는 곤고한 날이었다. 에훗 사사가 죽은 후에 또 범죄하는 백성을 여호와께서 시험한다. 여호와께서 군사력이 강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붙여 학대를 당하게 하고 백성들로 여호와께 살려달라고 부르짖게 한다. 사사가 있을 때는 하나님 경외하며 살다가, 사사가 죽은 후에 하나님을 멀리 하는데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건 버린 자식이다. 그러나 사사를 세워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을 진멸시키게 하므로 형통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반복해서 시험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언약을 하고 언약을 이루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하려고, 땅을 정복하게 했으면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여호와께서 왕을 주지 않고 왕이 없으므로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깨달아 알게 하려는 섭리이다.
여호와께서는 부르짖는 백성을 연약한 여자 드보라 사사와 바락 장군을 세워 구원해 주고, 백성을 괴롭히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미약한 여인 야엘을 통하여 죽이게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임을 이스라엘 자손으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위협적인 대적, 매우 강력한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시스라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있어서 대단한 사건으로 드보라와 바락이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찬송한다. 전쟁의 승리가 무기나 군대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에 있음을 깨달아 알게 하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을 위하여 전능하신 능력으로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께 찬송을 돌린다.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 군대를 물리치고 나서,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능력을 노래한다. 사람은 배고플 때 밥을 주어야 그 고마움을 안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 밖에 나가 엄마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배고프면 엄마를 찾고, 친구들한테 얻어터지면 집으로 달려오고, 이웃집 강아지만 나타나도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보니까 그때 생각이 떠오른다. 잠시라도 하나님께서 세상 재미에 빠지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 잊어버리고 아이들처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행복하게 돈도 잘 벌고 부유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게 하나님을 배도하는, 그것이 자기를 찬양하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라는 것을 자칫 잊고 사는데도, 하나님의 한결같은 마음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언약자손의 시험, 얼마나 의미 있는 섭리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자손을 번창시켜 땅도 정복하게 하고, 이제는 백성을 다스릴 통치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언약백성을 시험하는 데 도구로 쓰기 위하여 이방민족, 하나님 믿지 아니한 자, 불의한 자들이 이 땅에 있어야 할 이유이다. 그래서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밭에 곡식을 추수하기 전까지는 알곡 틈바구니에 있는 가라지를 뽑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작정섭리의 깊은 의미를 담아 치밀하게 섭리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면 어쩔 수가 없다. 공간과 시간세계 안에서는 도리가 없다. 욕망이나 지적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알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애쓰는 것은 다 뜬구름 잡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왕을 세워주지 않고, 악을 행하는 언약자손의 시험은 평범한 수난이 아니라, 온갖 수모와 멸시로 얼룩진 형극의 수난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 결국은 찬양케 하려는 섭리이다.
성경을 펼쳐놓고 말씀의 뜨락을 거니는 동안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의 눈물처럼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그 사랑을 힘입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만사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 따라 살게 되어지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를 상고해 본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언약하신 말씀을 이루어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가 향기롭다. 전쟁에 임하게 하신 여호와의 위엄을 찬양하고, 삼갈, 야엘의 날에 드보라로 행하신 하나님을 칭술한다. 모든 지파들이 드보라와 함께 싸우게 하심을 찬양하고, 대적 시스라를 쳐서 죽인 야엘로 복 받게 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시스라 어미의 허탄한 꿈을 비웃으며 주의 대적이 시스라와 같이 망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라는 간구를 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셨기 때문에, 즐거이 헌신하게 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한다.
넋두리를 쫓아가는 현실 속에서 참으로 ‘하나님이 여호와이시다’라고 믿어지는 것이 나로서는 더없이 충만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수학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머리털 하나까지라도 세신 바 되신 하나님,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질 수 없게 하나님이 다 주관하신다. 나쁜 마음은 사단을 통해서, 아름답고 선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성령을 통해서, 결국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 찬양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여호와께서 성경강론(박 용기 저)을 통해 소통의 구조 따라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 주는 지도자를 만나게 했다는 것은 조개 속의 진주와 같은 해후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로 하여금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해서, 여호와를 본주어로 모시고 살게 해 주셨다는 기쁨,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모두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드보라와 바락으로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여 가나안왕 야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로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다.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면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형통한 날이든 곤고한 날이든 하나님 당신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는 섭리에서 나오는 향기. 그 맛을 잃어버리면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달고 오묘한 말씀, ‘여호와 계시’는 나로 깨닫게 하는 스승이요, 여호와 살아계심의 확증이다. 지혜 주시기를 간구하며 ‘여호와만 찬송하리로다’ 조용히 다짐해 본다.